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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4. 2020

[채형복의 텃밭농사 이야기·2]

텃밭농사의 제1원칙-기계로 땅을 갈아엎지 않는다

텃밭농사의 첫 번째 원칙은 기계를 이용하여 땅을 갈지 않는 것이다. 대신 사람이 직접 호미, 괭이, 삽 등을 이용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파거나 갈거나 또는 김매기로 작물을 가꾼다. 이를 불경기재배(不耕起栽培) 또는 무경운재배(無耕耘栽培)라고 부르기도 한다(일본식 표현 말고 다른 적절한 말이 없을까?)


이 재배방식은 텃밭의 흙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이 가진 생명력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함으로써 토양을 더욱 기름지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흙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생명의 파괴가 일어나고 토양생태계가 교란되니 불경기 혹은 무경운재배는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인 셈이다.


인간이 도구를 이용하여 땅을 갈아엎는 것은 농사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처음에는 돌멩이 등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했지만 점차 호미, 괭이, 삽 등이 만들어지면서 땅을 더 깊이 효율적으로 팔 수 있었다. 과학기술문명과 함께 농기계도 개량되고 발전되어왔다. 처음에는 경운기나 관리기가 나오더니 이내 트랙터와 굴삭기까지 농지관리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기계문명에 힘입어 농부의 노동력은 절감되었고, 농업생산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농지를 지나치게 또 자주 갈아엎다보니 토양은 파괴되거나 유실되고 날로 척박해져만 갔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 경작하기 위해 또다시 기계로 땅을 갈아엎었고, 척박한 땅에는 오염된 축산분퇴비와 비료를 뿌려 영양을 공급해야 하니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농부가 능숙하게 소를 다루며 쟁기로 논과 밭을 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쟁기질은 땅위에 퇴적되어 있는 작물의 찌꺼기와 풀 등을 흙과 뒤섞어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과정이다. 또 토양을 공기에 순환시켜 미생물을 활성화시켜 땅을 더욱 거름지게 만든다. 농부들은 오랜 세월동안 이 방법을 사용하여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고 해도 농사도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이다. 하지만 쟁기질은 자연의 침해를 최소화하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방식이다.   


쟁기로 논밭을 가는 일은 농부와 소의 교감뿐 아니라 농부가 소를 다루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랴이랴 워~워~” 농부만의 외침으로 소를 앞으로 가게도 하고, 멈추고, 또 서게도 한다. 거친 땅을 가는 것은 아무리 힘센 일소에게도 힘든 일이어서 거친 숨을 뿜으며 약은꾀를 부려도 보지만 노련한 농부에게 통할 리가 없다. 농부는 소를 얼레고 달래고 꾸짖고 격려하기도 하면서 쟁기질을 한다. 어릴 적 나는 산등성이에 앉아 농부들이 능숙하게 소를 다루면서 쟁기질하는 하는 모습 지켜보기를 즐겼다. 그리고는 나름의 깨우침을 얻었다.


“아무런 배움이 없는 농부가 어찌 저리도 능숙하게 소를 잘 다룰까? 배움(지식)과 지혜는 다르구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지혜롭다고 할 수는 없구나.”


그즈음 시골생활은 사는 수준이 그만그만했다. 대부분의 농부는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지지 못하고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농사를 지어 웬만큼 소출을 낸다한들 땅을 빌린 대가로 땅주인에게 세곡을 주고나면 가족들을 먹일 양식이 부족했다.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월부터 아낙네들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캐어 식구들의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초봄부터 보리가 익어 수확하는 오뉴월이 될 때까지의 기간이 춘궁기다. 이 시기를 견디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미처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 먹기도 하고, 나물을 뜯어 멀건 국을 끓이거나 죽을 쑤어 먹었지만 배고픔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 가장들은 이웃이나 친척에게 보리나 쌀을 꾸거나 빌려야 했다. 갚을 때는 빌린 양의 두 배 내지는 세 배로 갚아야 했으니 빈곤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부모님이 처한 현실을 알길 없는 어린 내게 시골은 추억과 낭만의 시공간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늘 배고프고 고달픈 시절로만 기억되었다.


그즈음의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일은 여간 힘들고 고달프지 않았다. 모든 농사일은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삽이나 괭이로 논밭을 일구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 거칠고 넓은 들판을 오로지 농부가 직접 삽이나 괭이로 일구고 작물을 심었으니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어디 그뿐이랴. 기세 좋게 땅을 차고 올라오는 잡풀을 뽑고 제거하는 김매기도 농부들에게는 여간 벅차고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경운기가 등장하더니 농부와 소가 하던 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일소가 힘이 세고, 농부가 일을 잘한다고 한들 기계를 당할 수는 없다. 작업능률은 향상되었고, 소출은 증대되었다. 더 이상 소가 끄는 쟁기질을 할 필요가 없으니 농촌에서는 일소와 쟁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농촌도 시대의 변화를 피할 수 없다. 과거처럼 사람이 직접 힘든 노동을 하며 농사를 지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기계문명은 분명 농부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생계나 상업을 목적으로 짓는 농사가 아니라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경우에는 어떨까? 텃밭농사를 지으면서도 기계로 땅을 갈아야 할까?


내가 가꾸는 텃밭의 면적은 대략 6-70평쯤 된다. 텃밭치고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크기라고 생각한다. 도심에서 분양받은 10평 내외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보면 아주 넓지만 반대로 수백평 이상의 넓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볼 때는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이제는 텃밭농사 이력이 붙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지만 처음에는 이 정도의 면적도 내게는 여간한 노동이 아니었다. 집을 짓기 전에는 주말텃밭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갈 때마다 허리를 펴고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땅을 파고 작물을 가꾸고 결실을 거두어야 했다.


나보다 훨씬 큰 텃밭농사를 짓는 이웃은 수시로 내게 “교수님, 관리기로 시원하게 한 번 갈아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습나다”라며 정중하게 사양한다. “갈아엎으면 흙도 부드럽고 농사가 훨씬 잘 될텐데요”라며 못내 아쉬워하는 이웃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땅을 갈지 않고 텃밭을 가꾸겠다는 소신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내가 기계로 땅을 갈아엎지 않고 굳이 호미와 괭이, 그리고 삽으로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급적 땅에 피해를 주지 않고, 땅속 벌레와 미생물을 보호하여 토양을 되살려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짓기 위함이다. 관리기를 사용하면 힘도 덜 들고 편하지만 그만큼 땅과 생명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구태여 기계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다. 게다가 농부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가꾸고 살리는 사람이다. 나는 텃밭농사를 짓는 농부에 지나지 않지만 생명을 가꾸고 살리는 농사를 짓고 싶다.  


콘크리트와 시멘트 구조물로 뒤덮인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무서울 기세로 팽창하고, 자연을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농촌이라고 하여 다르지 않다. 젊은 농부가 없는 농촌은 점점 공동화되고 있고, 도시화와 기계화에 밀려 농촌의 생태환경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과연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조그만 텃밭을 가꾸면서 나는 도시의 물질문명이란 거대한 물결을 막을 수 있는 나만의 실험을 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실험은 성공할까, 실패할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텃밭의 지렁이는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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