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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Aug 02. 2020

[채형복의 텃밭농사 이야기·2]

텃밭농사의 제 4원칙-풀은 텃밭농사의 적인가


장마가 끝나가는 7월 말쯤 되면 작물도 왕성하게 자라지만 그에 못지않게 잡풀(일반명사인 ‘풀’과 구별하여 농작물이 자라는 데 해가 되는 풀이라는 뜻에서 ‘잡풀’이라 부른다)의 기세도 가장 좋을 때다. 성품이 정갈한 이웃 할머니가 있다. 아침마다 호미를 들고 밭에 가는데 “잡풀 때문에 힘들어 농사 못 짓겠다”며 푸념이다. 내가 “할머니, 잡풀은 적당히 뽑고 그냥 좀 놔두세요”라고 하면, “잡풀 때문에 작물이 자라야 말이지”라는 반응이다. 잡풀과 공생하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가, 잡풀은 텃밭농사의 적인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논밭의 잡풀을 뽑는 일을 김매기라 한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농번기 때 부모님의 얼굴은 집보다는 논밭에서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그만큼 잡풀은 농부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농부는 땅에 기대어 농사를 짓고 가족을 먹여 살리지만 땅은 작물과 잡풀을 구분하지 않는다. 성성한 기세로 자라나는 잡풀을 그대로 두면 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고사하고 만다. 잡풀과는 달리 작물은 농부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어쩌면 농사는 잡풀과 병충해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자를 방제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농약이 나왔듯이 후자를 억제하고 농작물을 키우려는 방법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검은 비닐을 덮는 것이다. 이를 ‘비닐 덮기’ 혹은 ‘비닐멀칭’이라 하는데, 봄에 땅을 일구고 비닐을 덮어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거나 억제한다. 


이 방법은 잡풀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일뿐 아니라 땅의 수분을 유지하고 병해충을 방지하여 작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등 농부들의 일손을 줄이는데 아주 유용하다. 나도 감자와 고구마, 토마토, 고추 등의 일부 작물은 비닐을 덮어 키우고 있다. 사실 자연농법이나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자 하면서 비닐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 나 역시 늘 마음이 꺼림칙하면서도 아직은 비닐을 쓰고 있다. 언젠가는 비닐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의 힘만으로 작물을 키워보겠다는 생각이다. 


비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여러 방법을 실험해보고, 시도하고 있다. 텃밭이나 정원에서 뽑거나 잘라낸 작물과 잡풀을 버리지 않고 덮기(멀칭)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텃밭의 규모가 작다고 할지라도 덮기 재료로 쓸 수 있는 작물의 부산물이 적지 않다. 상추와 쑥갓 등 채소류는 잎을 따고 난 후 남는 줄기를 이랑 사이에 던져두면 된다. 문제는, 옥수수대와 고구마·호박 줄기다. 쌓아두어도 쉽게 썩지도 않고 처리가 쉽지 않다보니 많은 농가에서 이들을 말린 후 불을 때서 없앤다. 이렇게 하면 화재의 위험도 있고, 텃밭이 마을 중간에 있는 경우 연기가 많이 나서 이웃에게 불쾌감 등 피해를 줄 수 있어 권장할 방법이 아니다. 


옥수수의 경우, 익은 옥수수를 따면서 줄기의 중간부분을 꺾어 바닥에 버리고, 나머지는 밑동까지 전지가위로 적당한 길이로 잘라 멀칭재료로 사용하면 된다. 이때 옥수수 뿌리는 뽑지 않고 땅속에 그대로 놔둬야 한다. 겨울을 지나면서 땅속에서 그대로 썩어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옥수수 뿌리를 뽑아서 처리하려면 잘 썩지 않아 애를 먹는다. 여러 방법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힘도 들지 않고 가장 좋았다. 


고구마와 호박 줄기는 거두어 텃밭 울타리 밑 가장자리를 덮어 발로 꾹꾹 눌러 밟는다. 시간이 지나면 절로 풍화되고 썩어 훌륭한 거름이 될 뿐 아니라 잡풀이 자라지 않게 억제하는 멀칭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정원 잔디를 깎은 부산물도 작물을 심은 이랑 사이를 덮어둔다. 한마디로 땅에서 나는 모든 작물과 잡풀은 버리지 않고 텃밭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땅이 거름지고 작물이 튼실하여 병충해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이 모든 방법은 사실 잡풀을 자라지 않게 하여 작물의 생장을 돕고 보호하면서 가급적 힘들이지 않고 텃밭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다. 가끔 집으로 놀러온 지인들은 전원생활을 부러워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텃밭농사가 힘들지 않냐고, 성가신 풀을 어떻게 다 뽑느냐고. 우리 머릿속에는 풀이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이웃농부들이 짓는 텃밭을 보면 작물만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풀 한포기 없이 깨끗하다. 가장자리에 나는 잡풀마저 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나 보다. 제초제를 뒤집어쓰고 노랗게 말라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속에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곤 한다. 


풀 뽑기, 즉 제초가 가장 필요한 시기는 봄이다. 봄에 씨를 뿌려 싹이 틀 때와 모종을 심어 뿌리가 땅에 활착하여 작물이 자라기 시작할 때는 신경을 써서 잡풀을 뽑아줘야 한다. 이 시기는 아무래도 작물보다 잡풀이 빨리 자라므로 적절하게 풀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작물이 자랄 수 없다. 농사란 작물과 잡풀을 자연 상태에서 야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농부의 개입 없이는 농사는 지을 수 없으니 잡풀 제거는 불가피한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잡풀이 농사에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땅의 습도를 유지해주고, 썩어 거름이 될 뿐 아니라 각종 병해충을 예방하는 등 잘만 활용하면 잡풀은 농사에 큰 도움을 준다. 


나는 작물이 싹을 틀 때와 모종이 뿌리를 내릴 때 외에는 잡풀이 웬만큼 자랄 때까지 그대로 놔둔다. 잡풀이 너무 어리면 뽑기도 성가시고 완전하게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자라면 호미나 손으로 뽑기도 수월하고, 아니면 낫으로 밑동이나 중간 부분을 벤다. 뽑거나 자른 잡풀은 작물을 덮어 멀칭하면 되니 일거양득이다. 잡풀제거의 관건은 그 기세를 꺾는 데 있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잡풀을 뽑거나 잘라주면 힘도 크게 들지 않는다. 또한 작물과 함께 서로의 영역에서 공생하니 굳이 애써 잡풀을 없애려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사람과 작물과 잡풀을 서로 원수로 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서로 돕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 농사의 가치는 여기에 두어야 한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는가. 이제는 잡풀을 억제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과 공존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농사는 생명을 죽이기보다는 살리는 데 있다. 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생명을 가슴에 품자. 우리 모두는 다시 농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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