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시골에서는 논밭에 뿌릴 거름(퇴비)을 발효시켜 만들어 썼다. 외양간에서 나오는 소와 돼지의 배설물에 짚, 풀, 낙엽 등을 섞어 발효를 시키면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각 재료들을 섞어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치면 두엄더미는 고온상태가 된다. 이를 퇴비 발효열이라 하는데, 미생물의 발효작용 결과 60~85도씨 정도의 고온이 발생한다. 비가 오고 난 다음날 아침 두엄더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유도 수분과 발효열이 결합하여 생긴 현상이다.
거름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는 부재료는 다양하다. 보통 벼농사를 지으니 짚이나 풀에 가축의 배설물을 섞지만 예전에는 푸세식 화장실의 인분도 사용하였다.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된 도시민들이 생각하기에 똥과 오줌으로 거름을 만든다는 게 상상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거름으로 가꾼 농작물을 먹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인상이 찡그러지고 입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위생이 열악한 농촌에서 자란 우리 세대는 대변검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었다. 뱃속에 회충은 물론 십이지충까지 들어있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기생충이 만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분을 사용한 거름을 제대로 숙성시키지 않고 사용하거나 인분을 농작물에 직접 뿌렸기 때문이다. 위생과학에 대한 지식과 교육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농부들이 농사를 지은 결과였다.
농작물에는 질소와 인산, 칼륨 등 필수 영양분이 필요하다. 화학비료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공급되기 이전 농가에서는 거름을 직접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이란 농부들이 직접 몸을 써서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엄더미를 만들어 쌓고 퇴비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부재료를 섞어 쌓아두기만 해서는 제대로 발효되지도 않을뿐더러 질 좋은 거름을 만들 수도 없다. 쇠스랑과 세발괭이(세발곡괭이) 등을 이용하여 한 번씩 두엄더미를 뒤집고 부재료를 골고루 섞어 주어야 한다. 이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어서 집에 힘센 장정이 없고서는 퇴비를 만들어 쓸 수조차 없다. 농업의 기계화도 농업 발전에 한 몫을 했지만 인공비료의 공급도 농가의 일손과 노동력 절감에 큰 기여를 했다.
매해 봄이 되면 각 농가에는 신청한 비료와 퇴비가 배달된다. 논밭과 과수원마다 수십 포대의 비료와 퇴비가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퇴비에도 품질등급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가축분퇴비 및 퇴비 품질등급 평가기준 등에 관한 운영 지침」을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품질검사는 유기물함량·유기물대질소비·수분함량을 평가하여 특등급, 1등급, 2등급의 세 종류로 나누어 평가한다. 농민들에게 유기질비료(퇴비)를 공급하는 목적에 대해 농촌진흥청은 이렇게 설명한다.
“농림축산 부산물의 재활용, 자원화를 촉진하고 토양 비옥도 증진 및 토양 환경 보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농업 육성 환경친화적인 자연 순환 농업의 정착 및 고품질 안전농산물 생산 유도”
화원이나 종묘상에서 정원이나 텃밭용 퇴비를 구입하면 20kg 한 포대에 6,000원에서 10,000원 정도 하니 농민들에게 공급되는 퇴비가 얼마나 싼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구입가격이 너무 싸다보니 농민들이 퇴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유기질비료 공급을 통한 “토양 비옥도 증진 및 토양 환경 보전”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텃밭농사 초기 나도 가축분 퇴비를 사용했다. 동네주민이 자신이 구입한 퇴비를 나눠주어 쓰거나 더러는 종묘상에서 몇 포대씩 사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집을 짓고 나서 텃밭을 조성할 때 새 흙을 넣는 객토를 했다. 다른 곳에서 흙은 가져와 넣었더니 영양분이 부족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득이 가축분 1톤을 사서 흙과 섞어 주었다. 부득이한 상황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고, 날로 고민은 깊어만 갔다. “거름을 만들어 쓸 수는 없을까?”
그때부터 거름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와 정보를 찾아 읽어 보았다. 농가나 개인의 경험도 듣고 나름의 방법을 궁리하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내 텃밭은 마을의 중간에 있어 농가에서 만드는 두엄더미를 만들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퇴비화시켜 거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고, 벌레가 꼬이지 않아야 한다. 또한 미관상으로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거름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나름 최상의 방법을 찾았다.
온라인 쇼핑몰을 검색해보니 대형 발효통이 눈에 띄었다. 60리터짜리 통을 구하여 가급적 많은 구멍을 뚫었다. 구멍을 뚫을 때는 아궁이 장작불에 달군 쇠꼬챙이가 유용했다. 통 아래에 톱밥을 두텁게 깔고 그 위에 음식물을 붓고 다시 톱밥을 덮은 식으로 발효를 시켰다. 한 번씩 삽으로 재료를 뒤집고 섞어 주었다. 여름은 바깥온도가 30도 이상의 고온이 지속되니 발효통 안은 그보다 훨씬 온도가 높다. 2~3주만 지나면 톱밥과 뒤섞인 음식물은 완벽하게 거름이 된다.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전혀 꼬이지 않는다. 발효통을 가지런히 놓아두니 보기에도 좋다. 네 개의 통이 가득차면 맨 처음 퇴비화가 된 거름은 밭에 뿌려 사용한다.
내가 생각하는 전원생활은 자주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집을 지으려 구상할 때부터 나는 텃밭을 고집했다. 경제적 이윤으로만 따지면 텃밭농사는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몇 푼의 돈으로 채소를 사먹고 그 땅을 달리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살다 다시 땅으로 돌아갈 땅의 자식들이다. 땅에 기대어 살지만 되도록 땅을 아프게 하지 않고 정성껏 걸우어야 한다. 내가 떠난 다음에 누가 이 땅의 주인이 될지 모른다. 또 그가 나처럼 집을 가꾸고 텃밭농사를 지을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땅을 안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