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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Oct 04. 2020

[소선재 한담·14] 은둔과 칩거의 사이에서

지난 2월 말 프랑스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팔공산 집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다. 워낙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 지인들이 “요즘 뭐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 물음에 “칩거하고 있다” 대답하곤 하는데, 반응이 신통찮다. 칩거란 말이 염세적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다 보니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전에서 ‘칩거’를 찾아보니 “나가서 활동하지 아니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음”이다. 유의어로 은둔·은거 등이 있는데, 모두 “세상일을 피하여 숨음”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말의 히키코모리를 ‘은둔형 외톨이’라 부르고 있는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칩거든 은둔이든 세상과 사람관계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패배자)’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한 번씩 세상을 떠나 자연으로 숨어들곤 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여름과 겨울방학이면 산과 들로 숨어들었고, 정신적 방황으로 온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는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다. 공부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정하여 앞으로 치달리면서도 가끔은 딱!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선다. 몸과 마음이 “이제 됐어”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세상이나 타인이 세운 기준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다. 지극히 이기적이라 손가락질 받아도 좋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소란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칩거하는 동안에는 책을 읽거나 글도 쓰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어슬렁거리거나 빈둥빈둥 게으름 피며 보낸다.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내고 나면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목이 마르다고 바닥까지 물을 긁어 퍼내버리면 흙탕물을 마셔야 한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 다시 우물을 가득 채우려면 시간(여유)이 필요하다.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과 성취는 시간이나 여유를 먹고 자라는 지도 모른다.


얼마 전 봄과 여름작물을 모두 거두고 가을과 겨울작물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다. 무는 제법 몸통이 굵어졌고, 배추도 하루가 다르게 속이 차고 있다. 촘촘한 당근은 솎아주었더니 눈에 띄게 크고 있다. 한겨울과 초봄에 먹을 봄동과 시금치도 씨를 뿌려 두었다. 텃밭주인과 함께 작물들도 칩거 중이다. 요란하거나 시끌벅적 떠들지 않고 조용히 땅에 뿌리내리고 자신의 요량대로 자라고 있다.      

가수 나훈아가 화제다. 그가 한 말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산속에서 칩거하고 있는 내 귀도 시끄러울 정도니 나훈아가 스타가 맞기는 한가보다. 가수는 노래하고, 듣는 사람은 그냥 들으면 된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음악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정치와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산새 소리마저 정치나 국뽕으로 받아들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내일 해가 뜰지 어둠이 내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밤이면 어둠이 내리고 밤이 온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살아있는 이곳에는 구름 끼어 하늘이 흐리지만 산새 소리 요란하니 세상이 당장 결단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드시게.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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