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마음을 굳게.
그날이 왔다.
마흔둘, 이제부터 나는 인생 처음으로 워킹맘의 삶을, 새벽형 인간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하루하루는 더디고 일 년은 눈 떠보니 어느새 지나갔다. 직장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일 년이라는 기나긴 휴직을 내고 육아를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복직이다.
내 손은 늙고 제 머리를 가누지도 못했던 아기는 이제 뛰어다닌다. 나는 멈추었지만 아기가 달렸다.
그거면 되었다.
인간이 1년 만에 얼마나 급성장하는지를, 내 두 눈으로 생생히 확인했다. 신비한 경험이다.
너덜너덜해진 나는 눈물보다는 그래도 웃음이 더 많아졌다. 서서히 여물어 다시 내 자리로 가야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를 우리 둘이 온전히 길러내야 한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우리는 계획을 짰다.
다행히 우리 회사가 시차 출근제를 하고 있어 내가 새벽 일찍 나가고 일찍 퇴근을 하면 남편이 아기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내가 하원시키는 계획이었다.
복귀 일주일 전, 마음은 항구에 닿지 못하고 멈춘 배처럼 공중을 헤매고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조차 모를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뭔가 기억에 남는, 내가 해 보지 못한 일을 하나 하자, 하는 생각에 우연히 글쓰기 특강을 가서 알게 된 고수리 작가의 줌 강의가 있다기에 신청을 해 놓았다. 무려 돈을 주고 강의를 신청한 일이 나에겐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굉장한 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다행히 아기가 어린이집에도 적응을 잘해주는 효자였기에, 아기를 아침에 딱 등원시키고 커피 한잔 사들고 들어와서 노트북으로 줌을 켜고 고수리 작가의 다정한, 위로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내 마음의 배도 항구에 정착시켜야지. 했더랬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것을 매 순간 깨달으면서도 늘 '아차차'하는 인간이 나다.
아기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3주 차에 콧물이 범벅이 되더니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새벽에 전전긍긍하다가 소아과가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바로 병원으로 날아갔다.
'이 정도면 입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급성 편도염과 부비동염 세균성 감염이 걸린 우리 아가. 그렇게 잘 먹던 아기가 밥을 거부하고 안 먹어서 나는 요 며칠 아기에게 짜증 섞인 말로 혼도 냈더랬다.
'엄마가 이거 만드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세 숟갈만 더 먹어! 왜 왜? 왜 안 먹는 건데?'
말 못 하는 돌쟁이 아가는 목이 아파 못 먹었던 것이었는데,
미안함에 눈물이 주룩 났다.
그렇게 회사 복귀 일주일 전 마지막 주말에 나는 아기와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 물론 고수리 작가의 줌 강의도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 3일 만에 아기는 퇴원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도 항생제를 포함한 약을 열흘 넘게 먹어야 했다. 바로 다음 주면 나는 회사에 가야 하니 어서 아기가 나아 어린이집에 적응도 해야 했다.
아직 너무 어린데 엄마품에서 더 놀게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고민과 연민과 슬픈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진짜 그날이 왔다.
원래 다니던 회사에 다시 가는 것인데도 왜 잠이 이토록 오지 않을까?
내가 사는 곳은 오래된 아파트라 주차장이 아주 복잡하고 촘촘한데 만년 초보 운전인 나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데만 십여분이 넘게 걸린다.
복귀 첫날, 역시나 내 차 앞에는 이중 주차된 차량이 있었다. 그 차 주인에게 전화를 할지, 아니면 그 좁은 사이를 어떻게든 빠져나갈지 고민하다 한시라도 빨리 출근해야 퇴근해서 애를 데려올 수 있다는 일념에 나의 운전 실력을 망각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왔다 갔다 이리저리 몇 번을 하다 한 번만 더 움직였다가는 출근을 못하고 현대해상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호출했다.
'오빠, 나 지금 올라갈 테니까 내 차 좀 빼줘!'
다급하게 차를 멈추고 아기를 혼자 둘 수 없어 집으로 다시 올라가 남편에게 차키를 던졌다.
'빨리빨리!' 심장이 떨렸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남편도 왔다 갔다 몇 번을 하더니 차를 무사히 빼냈다.
다시 아기에게
'엄마, 회사 가는 거야! 우리 아기는 어린이집 가서 잘 놀고 엄마는 일하고 와서 같이 더 재밌게 놀 거야! 빠빠!'
하고는 부리나케 다시 집을 나섰다.
종종거림의 시작.
워킹맘의 시작.
그렇게 회사에 도착했는데, 계획보다 한 시간이 늦었다.
아가야 미안. 한 시간 더 어린이집에 있어주렴.
그리고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동결'이란다.
정신없이 웃으며 알겠다고 하고 사인을 하고 또다시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육아휴직을 들어간 게 작년 3월, 출산휴가 기간에 진행한 연봉 협상도 돌아오면 반영해 주겠다고 하고 보류했더랬다.
그리고 돌아오니 또 '동결'
심지어 나는 웃으면서 오케이를 하고 나서 이게 왜 자꾸 걸리고 생각이 날까.
왜 한 마디도 덧붙이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가서 말을 할까? 이미 사인까지 다했는데?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이 생각이 나를 또 잠식했다.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소탐대실', 괜히 찍히는 것보다는 그냥 이번엔 넘어가고 다음 연봉 협상 때 말하는 게 어때?’
사실 회사의 근무 조건도 나름 만족하고 복지도 이만하면 좋다.
그런데도, 뭔가 정당하게 할 말도 못 한 것 같은 내가 서운하다.
'근데, 기회가 되면 나 할 말 하려고! 어차피 소탐도 이루지 못할 테지만, 속은 후련하고 싶거든. 대실 하면 어쩌냐고? 그땐 또 내가 내 방식대로 나를 지켜야지.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먼저 지켜주지 않을 것 같아.'
그래, 내가 나를 지켜줘야지.
더 굳게, 더 유하게.
덧. 오늘, 드디어 대통령 파면이 인용됐다.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는 세상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