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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Jul 20. 2023

나 탐구 기록

나는 계속 사라지는 걸까?


여름 장마, 아니 이제는 우기라고 했나? 비가 계속 내리는 이 여름에 나는 가만히 옛날의 나를 떠올려본다.


인생의 1/2을 살았다고 주관적으로(어쩌면 희망 사항으로) 판단한 현시점에서 나는 나에 대해 탐구하는 글쓰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문득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과거의 내가 떠올렸던 이 질문이 생각났다.

   

'방금 전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열세 살 초여름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른 저녁을 먹고 마루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수시로 사라지는 걸까? 방금 전 가족들과 저녁을 먹던 나는, 배를 두드리며 마루로 걸어 나온 나는, 그러니까 방금 전, 아니 지금도 나는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 건가?‘


참 뜬금없다.

계속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만한 나이였을 텐데도

방금 전, 오늘 아침, 어제, 몇 달 전, 몇 년  전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헷갈렸다.

그리고 이 호기심은 키의 성장이 멈추자 내 관심사에서 떠나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뜬금없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서른아홉이 된 나는 과거의 내가 떠올린 이 질문에 여전히 답을 할 수가 없다.


플라톤이 말한 대로 현상계의 모든 실체는 실은 그림자일 뿐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그림자일 뿐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그 순간순간의 모든 실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일까?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어디서 읽은 야트막한 지식으로 질서 없이 번진 생각을 다듬어보고 싶었으나, 이건 역시 한계다. 질문 자체가 내가 감당하기엔 무겁다.


그냥,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라는 존재는 결국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지는 것, 잊혀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사실, 나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사라지는 나를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래도, 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순간을 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몇몇 순간들은 잡아 두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나에 대해 기억해 내는 것이다.  


인생 1/2 지점에서 나를 돌아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순간의 나를 집요하게 기억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로 다시 한번 돌아가보려 한다.


긴 시간 동안 바깥으로 돌려진 시선을 이제 다시 나에게 맞추려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내가 나를 더 탐구하고 이해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나 탐구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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