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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Apr 07. 2024

나의 봄

나의 시_127

네가 꽃 사진을 찍자 비로소 봄이 되었는데

그건 초록과 흰색이 칠해진 병원 건물 옆이었다

출근길에 , 벚꽃이라고 불리는 것

회사 근처에 있는, 개나리라고 불리는 것

그것들은 단 한 번도 봄인 적이 없었고

네 작은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자 봄이 있었다


단단한 것을 깨는 건

가장 약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것들이다

계란껍질 속에 병아리가 되려다 만 노른자 흰자

새알을 갓 깨고 나온 눈도 못 뜨고 서지도 못하고 삑삑거리지도 못하는 푸욱 젖은 새 비슷한 것

에미의 질을 찢는 그래서 기어이 피를 보고서야 분만실 천장 창백한 불빛의 환호 속에 펄떡펄떡 움직이는 아주 작은 사람의 대천문*

그리고

겨울처럼 매연처럼 가래침 섞인 담배연기처럼 뻔뻔하고 질깃질깃한 나무껍질을 마침내 뚫는, 얇아서 핏줄이 다 보이는데 크기는 똑 새끼손톱만한 저것, 보이기는 하는데 잡히지는 않는 저 아슬아슬한 것


그러니 나는 네 휴대폰 속 봄을 보고

열 여덟 해 전 네 머리에서 들락날락하던 숨구멍을 떠올릴 수밖에

신기해서 손가락을 얹어 봤다가

그 손가락 무게에 지레 놀라 화들짝 손을 떼고

만져볼까 말까 가슴만 간질이다가

이 봄도 네 작은 머리 위 숨구멍 닫히듯 지나가 버릴 테다


오늘도 초록과 흰색을 두른 이 병원 어딘가에선

누군가가 에미의 몸을 찢고 봄의 비린내를 한껏 풍길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도통 애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으니

겨울이 이다지도 길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봄은, 이제 막 숨구멍에서 헐떡이기 시작했는데.



* 대천문 : 갓 태어난 아기 두개골 사이의 틈. 생후 14개월 경에 닫힌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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