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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y 19. 2024

집착 대마왕

일상기록

올해 들어 괴로운 일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괴로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가볍지 않은 병에 걸렸고, 내 신상에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 일들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으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들에 더해 새로 생긴 일들이 내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온 몸에 매달린 문제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방해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기도 전에 또다른 문제가 터지는 상황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수도 없어서 오만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그럭저럭 상황을 수습하고 나면 그 뒤에는 깊은 우울감이 따라왔다.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자꾸 생기는 데 대한 원망(대상이 누구인지도 불확실한)과 두려움, '너 인생 완전히 망했네' 라고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인생이 망해가는데도 손을 쓸 수 없다는 무력감 따위는 그런 감정을 초래한 상황 자체보다도 견디기 어려웠다. 3년간 복용한 우울증 약을 작년 말에야 간신히 끊었건만 나의 감정은 깜깜한 심연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고 있었다. 머리가 자꾸 아팠고 어지러웠으며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기분이 잠시 괜찮았다가 한없이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반복되었다. 이미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티비에서 불교에 관해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마 지난 15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 특집 편성을 한 듯했다. 방송 중에 어느 스님이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대해 말을 하였다.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인간이 무상,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그로써 온갖 고통에 빠져 있다는 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내 상황이 고통 그 자체였으므로.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말씀,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 없으며 모두 변한다는 뜻.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왜 내가 이토록 괴롭고 힘든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에게 생긴 일들은 그 자체로 심각하고 가볍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것이 그 일 자체인가 아니면 내 마음인가? 그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나는 몇 달만에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아프면 나는 무척 힘들고 괴로웠다. 물론 아기가 아프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마음이 아프고, 또 나을 때까지 챙겨야 할 일이 늘어나므로 물리적으로도 많은 노력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나를 힘들게 한 건 아니었다. 내가 바란 건 '완벽한 엄마'였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잘 돌보고, 시기에 맞춰 발달도 잘 시키며 음식도 잘 먹이고 공부도 잘 시키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성과는 아이들을 얼마나 흠 없이 잘 키워내느냐에 달렸다고 여겼다. 나의 평가잣대는 가혹했다. 그래서 아이가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히면 내 코도 막히는 것 같았다. 그건 나의 '완벽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에 흠을 내는 일이었으므로.


건명이는 엄청난 편식쟁이에 까다로운 기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아주 잘 했고, 중학교까지는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돌 느낌의 외모 덕분에 여자아이들에게 인기도 제법 있었다. 그랬던 건명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성적이 급전직하하여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올해에는 뜻하지 않았던 병까지 진단받은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까칠하고 편식이 심한 아들을 제법 잘 키워낸 엄마'라는 나의 성취를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내가 십여년 간 이루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사상누각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건명이의 성적과 병을 생각하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진 것 같았다. 내 신상에 생긴 일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는, 일도 매끄럽게 잘 하며 인격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하고 깔끔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게 나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오던 이미지가 무참히 깨지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마주치는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손가락질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이건 허상일 뿐이야, 저들은 나를 몰라'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그게 문제였다. '키우기 어려운 아이를 잘 키운 대단한 엄마', '남들에게 흠잡힐 일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나는 한없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에 중독되었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자신을 들들 볶으며 괴롭히고 있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나였다.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괴로움과 힘겨움은 나에게 생긴 문제들 자체로부터 비롯되기도 했지만, 그걸 더 강화한 건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에 집착한 나 자신이었음을. 그리고 고개를 들어 보니 시간은 무심히, 하지만 자비롭게 흐르고 있었다. 역시 영원한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언젠가 죽는다는 것만 빼고.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당장 내일 어떻게 변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오늘 밤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하여 심하게 다친 내 마음이 바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더 좋아질수도 있겠지만 더 나빠질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역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거칠게 흐르는 마음 속 강물을 굽어보기 위해 내가 딛고 설 단단한 바위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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