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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y 25. 2024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문정희, 민음사)

독서노트 _44

문정희 시인의 이 시집은 작년에 사놓고 올해에야 다 읽은 것이다. 깜냥도 안되면서 작년에 시집을 몇 권이나 사들였다. 물론 시집 말고 다른 책들도 샀다. 그런데 다 읽은 건 몇 권 안 된다. 그러고보니 내 독서량이 생각보다 상당히 적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책을 많이 못 읽게 된 것에 대한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지만 그건 다 그냥 핑계일 뿐. 핑계보다는 반성과 다짐이 좀더 생산적이다.


 문정희 시인은 무려(!) 47년생 현역 작가로서 그 이력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 연세에도 국립한국문학관 2대 관장직을 수행 중인 대단한 분이기도 하다. 그런 시인이라서인지 그녀의 시는 사회의 여러 현상도 자유자재로 다루며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시국에 작업을 해서인지 그에 관한 시도 꽤 되는게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그런 것들보다 다른 시 두 편에 가서 꽂혔다. '도착'과 '여자 작가'가 그것이다.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도착' 일부)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다르는 곳은 결국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일 것이다. 수시로 "아 난 왜 이렇게 안 풀려"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그런 뭇 사람들에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

지는 것도 괜찮아

지는 법을 알았잖아

슬픈 것도 아름다워

내던지는 것도 그윽해"


시험 성적이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아 걱정하고 고민하는 우리 애들에게 나는 말해준다. 엄마는 학교 때 시험 정말 잘 보았노라고. 하지만 시험 성적에 비해서 지금 하는 일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그러니 시험을 잘 보면 좋겠지만 그 성적에 너무 연연할 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대학을 원하지 않는 학과로 가기는 했지만,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아 4년 내내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전공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는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를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다. 발이 닿지 않는 늪에 빠져 가라앉지 않으려고 버둥대던 시절, 동기들의 좋은 소식이 하나 둘 들려왔다. 그때마다 울었다. 나에게 그런 여건이 허락되었다 해서 그들과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는데도 그냥 내 현실이 몹시 서러웠다. 그러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새 직업을 얻게 되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그랬던 건 너희 복, 지금 이런 건 내 복'.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다 해도 내 성취 역시 작지만 소중한 것이다.


'여자 작가'를 읽으면서는 시 속의 상황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쓴웃음이 나왔다.

"빨래를 널고 와서 책상에 앉는다

막 난 글은 다시 살아나지 않아

식어 버린 차를 마신다. 집중은 흩어진 지 오래"


글쓰기는커녕 퇴근 후에도 책 한 장 집중해서 읽기 어려운 내 모습이 시 속에 있었다. 평일 근무시간에 책을 읽는 것은 당연히 안되고, 결국 퇴근 이후나 주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몇 시간이 내게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평일에는 가사를 상당부분 부담해 주시는데도 그렇다. 책을 펼치면 아이들이 이야기하자고 달려와서 지들이 재미나게 본 동영상 따위를 같이 보자고 틀어준다. 아이들에게 내 시간을 내주는 틈틈이 빨래정리를 하고 물고기 밥을 주고 집안 이것저것 정리도 하고 다음날 출근 준비며 애들 학교에 가져갈 것들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내가 펼쳤던 책은 '대체 내 차례는 언제 오나 '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풀이 죽어 잠들어 버리고, 나는 잠든 책을 고이 접어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정희 시인같은 대가도 '일상을 챙기는 건 여성의 몫'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는지 시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일상에 물어뜯기지 않으려고 머리를 늘어뜨리고

광녀처럼 울었지만

하루가 또 가뭇없이 사라진다

사라짐만이 오직 현실이다"


하루에 책 열 장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 역시 광녀처럼 속으로 매일 울었다. 하지만 운다고 해서 없는 시간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일상은 조용하지만 냉엄했고, 하찮았지만 무거웠다.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는 일상, 어쩌면 죽고 나서도 새로이 시작될지 모르는 죽은 자들의 일상. 역시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분초를 걸어 꾸역꾸역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가야 한다. 다행히 그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출발 시간이 따로 없다. "천천히,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고 꼭 오세요" 라고 무명의 역 역장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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