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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Feb 24. 2023

렘브란트, 인간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그리다

나는 누구인가? 이 불행은 무엇인가?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 1606~1669), 우리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 뭉툭한 코와 동그란 눈, 부스스한 고수머리와 짧은 눈썹을 지닌 그는 한 때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다. [그림 1] 이 청년에게 관습과 예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피사체를 선택했다. 그의 <아담과 이브>[그림 2]는 부끄러움도 아름다움도 모르는 하찮은 인간처럼 보인다. 일찍이 어떤 화가도 이처럼 볼썽사나운 누드화를 그린 적이 없었다. 평범한 하층민들을 데려다 모델을 세운 렘브란트는 그들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았다. 오랫동안 누드가 담당했던 역할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일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는 그저 자기 눈에 보이는 평범한 인간의 몸을 그렸다.


그림 1. <자화상>, 1629, 캔버스에 유화, 38 x 29 cm / 그림 2. <아담과 이브>, 1638, 에칭, 162 x 116 cm

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예술은 렘브란트를 바로크의 거장이자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미술시장은 그를 밀어냈다. 그럼에도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이전보다 더 놀라운 빛을 표현해 냈다. 파산하고 몰락한 순간에 그가 만난 고귀한 빛을 만나보자.




실패한 초상화 혹은 성공한 역사화


26살의 렘브란트는 외과의사 길드로부터 집단 초상화를 주문받았다.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그림 3]에서 의뢰자들은 다양한 포즈로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화가는 집단초상화의 원칙에 따라 회원들의 얼굴을 비등한 크기로 화면에 담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해부학 수업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 ‘역사화’처럼 보인다. 툴프 박사는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들어 올리고 있고, 참관자들의 시선과 손짓이 우리의 눈을 정확히 그 해부된 근육으로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3.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캔버스에 유채, 170 x 217 cm, Mauritshuis, The Hague


이 그림은 렘브란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출세한 그는 아름다운 여인 사스키아와 결혼했고, 커다란 저택을 구입했으며, 흥미를 끄는 골동품과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하지만 성공과 행복의 시간은 짧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몰락을 알린 그림도 역사화처럼 보이는 집단초상화였다.


<야경夜警>[그림 4]의 원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단장이 이끄는 방위대원들>로 암스테르담 민병대 본부에서 주문한 집단초상화였다. 렘브란트는 대원들이 한낮에 거리에서 축제행렬을 함께 하는 장면으로 이 그림을 구상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색이 어두워지고 먼지가 쌓여 지금과 같은 제목을 얻게 되었다. 렘브란트는 주문을 받고 2년 만에 이 그림을 완성했는데, 그림을 본 민병대는 이를 거부했다. 대원들의 모습이 전혀 근엄해 보이지 않았고, 회원들의 얼굴이 대등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집단초상화의 원칙도 깨어졌기 때문이었다. 인물들의 크기는 각기 다르고, 어떤 이들은 얼굴이 반쯤 가려졌다. 게다가 민병대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아이들, 개까지 등장해 화면을 어지럽히고 있다. 민병대가 이 그림을 거부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림 4 <야경>, 1642, 캔버스에 유채, 363 x 437 cm, Rijksmuseum, Amsterdam


그럼에도 <야경>은 바로크 시대의 역작이다. 렘브란트는 집단초상화를 장대한 역사화로 만들었다. 민병대 단장이 한쪽 손을 내밀며 걸어 나가고, 부관은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따른다. 이 그림은 매우 커서 벽에 걸면 거의 바닥까지 닿게 되는데 그로 인해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은 액자라는 문턱을 가볍게 넘어 관람객을 향해 나올 것만 같다. 이런 구성으로 그림 속 공간과 관람자의 공간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공간이 열리자 소음이 새어 나온다. 행진 준비는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총구를 소지하고, 깃발을 펴고, 북을 친다. 창들이 부딪히고, 개가 짖고, 아이가 뛰고, 사람들이 웅성댄다. 다양한 행동과 소리들, 이 모든 것은 마치 거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의 한 장면인 것처럼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자화상, 신에게 던지는 화가의 질문


<야경>이 거부되면서 불행이 렘브란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내 사스키아가 아들을 낳은 뒤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그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졌다. 다행히 아들을 돌보기 위해 얻은 가정부 핸드리케는 그에게 사랑과 안정감을 주었고 거의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나 두 사람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렘브란트에게 딸도 안겨주었으나 불륜으로 고발당했고, 자신이 연인이 아니라 매춘부와 같았다고 법정에서 고백하면서 겨우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딸도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그 가운데 렘브란트는 경제적으로 계속 어려워졌고 50살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파산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핸드리케와 아들마저 사망하고 만다.

 

연이은 불행은 그를 내면세계로 깊게 침잠하게 만들었다. 고독한 화가는 이전의 화가들이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깊은 고뇌에 빠졌다. ‘화가는 어떤 존재인가?’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화가는 신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사실 예술의 역할을 부정한 칼뱅교가 장악한 암스테르담에서 화가라는 직업은 그 소명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황실과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없게 된 화가들에게 남은 일거리는 부자들의 재물과 지위를 추켜세우는 일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청빈과 근면을 강조하는 칼뱅주의에 안에서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렘브란트 부정당한 자신의 삶을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 5. <자화상>, 1658 / 그림 6 <베드로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1 / 그림 7. <자화상>


그렇게 불행과 실존적 질문 속에서 늙어가는 화가의 얼굴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홀로 왕좌에 앉아 근엄하게 고독을 견디는 중년의 얼굴[그림 5], 박해자였다가 선교사가 된 바오로처럼 분장을 하고 체념한 듯 우리를 바라보는 노년의 얼굴[그림 6], 어둠 속에서 웃으며 빛나는 물감덩어리가 되어가는 끔찍한 얼굴까지 [그림 7]. 렘브란트는 온갖 얼굴을 하고서 계속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이 불행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덧씌워진 신분이라는 허울은 벗겨졌으나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종교개혁을 이룬 새로운 교회는 치열한 경쟁이 불러온 개인의 가난과 고통에 관해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칼뱅주의는 인간이 겪는 행복과 불행은 하느님의 예정된 선택이라고 주장하며 이 문제를 사실상 외면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신의 답을 기다렸다.      




<돌아온 탕아>, 신의 품에 안긴 불행한 인간의 뒷모습


렘브란트는 생의 거의 마지막에 <돌아온 탕아> [그림 8]를 그렸다. 이 그림은 성서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종교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종교화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종교화를 숭배하는 예배 대상이 아니라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림 8. <돌아온 탕아>, 1669, 캔버스에 유채, 262 x 206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미리 재산을 물려받고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 해진 신발은 한쪽이 벗겨졌고, 옷은 누더기가 되었다. 기다림에 지쳐 한쪽 눈이 짓물러 반쯤 장님이 된 아버지는 죄인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아들을 품에 안는다. 그런데 아버지의 두 손의 모양이 조금 다르다. 큼직한 왼손은 분명 아버지의 손인데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는 오른손은 어머니의 손이다. 남루한 아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깊은 신의 사랑은 이렇게 부성과 모성을 모두 가진 손을 통해 표현되었다.

 

한편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형제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묻혀있다. 하지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밝게 빛난다. 이 빛은 외부에서 비치는 빛이 아니라 부자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빛이다. 용서를 구하고, 자비를 행하며, 서로를 끌어안는 행위가 빛이 되어 어둠을 벗어나는 출구를 만든다. 단순하지만 이것이 인간이란 존재를 탐구해 온 렘브란트가 기나긴 고난 속에서 건져 올린 나름의 해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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