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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Mar 13. 2023

벨라스케스, 거울이 된 회화

인상주의를 예고한 화가

“나는 나의 회화적 이상을 벨라스케스 안에서 발견했다.” -에두아르 마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화가 마네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이전의 그림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 미술사에서도 벨라스케스는 미술의 방향을 바꾼 화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살았던 환경을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벨라스케스는 종교적 흥분으로 가득 찬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80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기에 서양 미술의 토대가 빈약했다. 16세기말에 엘 그레코를 비롯한 몇몇 외국인 화가들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스페인은 17세기에도 여전히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벨라스케스는 서양 미술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다.


마네가 느꼈던 벨라스케스의 새로움은 무엇이었을까? 미술은 변화는 왜 하필이면 예술의 변방인 스페인에서 찾아왔을까? 벨라스케스는 어떻게 미술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완전한 세계, 실제 세계, 망막에 비친 세계


그림 1. 카라바조, <성 마태오를 부르심>, 1599-1600, 캔버스에 유채, 322 x 340 cm 콘타렐리 예배당,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로마, 이탈리아

예술적 기반이 없었던 스페인에서 카라바조[그림 1]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벨라스케스도 복사본을 통해 카라바조를 접했다. <세바아의 물장수>[그림 2]에 등장하는 물장수 노인과 소년, 항아리와 유리잔은 카라바조의 사실주의를 본받아 모두 실재하는 모습 그대로 그려졌다. 두 화가는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사용법은 조금 달랐다.


카라바조의 빛은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강한 목적을 가진 인공 조명이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의 빛은 단지 어둠 속에서 물체를 비추는 물리적인 역할만을 할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카라바조의 빛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짚어주는 데 반해 벨라스케스의 빛에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


그림2. 벨라스케스, <세비아의 물장수>, 1623, 캔버스에 유채, 106,7 x 81 cm, Wellington Museum, Apsley House, London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카라바조의 인물들은 모두 다 견고하게 그려졌다. 인물들은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조명만 받고 있지만 그들의 옷자락, 피부 등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이 선명하다. 이점에서 카라바조의 그림은 다분히 ‘촉각적’이고 ‘이성적’이다. 보이지 않는 형상을 손으로 만져서 알아낸 것처럼 명료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전면에 있는 항아리는 선명한 광택을 내며 반짝이지만 뒤로 갈수록 사물의 형체는 흐려진다. 이런 현상은 벨라스케스가 ‘망막에 비친 세계’만을 그렸기 때문이다. 우리 눈은 어둠 속에서 사물의 윤곽을 식별하지 못한다. 그것은 희뿌옇게 떠오르는 알 수 없는 색일 뿐이다.


그림 3. 벨라스케스, <난장이 세바스티앙>, 1645 / 그림4. <난장이 돈 후안>, 1637-39,


이런 벨라스케스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그림은 어릿광대들을 그린 그림들이다. 그는 못생긴 난쟁이, 사팔눈을 가진 어릿광대 등을 거북할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림 3, 4] 하층민들을 바라보았던 할츠의 유쾌하고 따스한 시선이 벨라스케스에겐 없다. 그는 모델과 교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비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실험이었다. 벨라스케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렸다. 난쟁이도 왕도 교황도 그는 전혀 미화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평등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단순했고, 윤곽선이 보이지 않았으며, 흐르는 붓질로 빛과 색채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실제 같았다. 그것이 인상주의자 마네를 그토록 흥분시킨 이유였다.      




화가는 없다

그림 5. 벨라스케스, <시녀들-Las Meninas>, 1656-57, 캔버스에 유채, 318 x 276 cm, Museo del Prado, Madrid


<시녀들-Las Meninas>[그림 5] 은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는 작품이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에서 높이가 3m에 달하는 이 그림을 직접 보아도 이 작품이 왜 그토록 찬사를 받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그림은 루벤스의 그림처럼 역동적이지도 않고 렘브란트의 그림과 같은 짙은 호소력도 없다. 그런데 왜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주목하는 것일까?


앞서 말한 대로 벨라스케스의 눈은 평등했다. 중심에 선 마가리타 공주, 그녀를 보좌하는 시녀들(메니나스: 공주의 친구도 되고 시중도 드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의 딸들)과 난쟁이, 심지어 앉아 있는 개와 개를 괴롭히는 꼬마, 붓과 팔레트를 든 화가 자신까지 매우 사실적인 모습으로 화폭에 담겨있다.


이상한 점은 공주와 화가를 비롯한 인물들이 정면을 응시하고 갑자기 멈춰 섰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벨라스케스는 벽면에 걸린 거울을 통해 정답을 암시한다. [그림 6] 펠리페 4세와 왕비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는 거울은 그림 밖에 존재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이 그림은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화실에 놀러 온 공주와 시종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6. <그림5>의 부분


그림 안의 화가와 공주는 왕을 바라보고, 그림 밖의 왕은 화가와 놀러 온 공주의 일행을 바라본다. 이렇게 안과 밖이 뒤섞이고 시선과 시선이 교차되는 화면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이 평범한 궁정의 일상을 담은 장면을 독해하기 위해 그의 책 [말과 사물]의 첫 장을 할애했다. 푸코의 흥미를 끈 것은 ‘도대체 이 장면을 바라보는 주체는 누구인가?’였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장면을 바라보는 해석하는 주체는 화가다. 하지만 이 그림은 화가가 아니라 모델을 서고 있는 왕이 바라보는 화실 풍경을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리는 진정한 주체라고 말해질 수 없다.


더불어 푸코는 벽에 걸린 거울에 주목했다. 거울은 그림에서 재현될 수 없는, 그림 밖에 존재하는 왕의 존재를 비춘다. 아니 그들의 존재만을 비춘다. 공주와 화가의 뒷모습은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울은 화가 앞에 놓인 커다란 캔버스의 이면, 아니 캔버스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표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벨라스케스는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재현해 왔던 화가의 위치를 지워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무심하게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대상을 재현했을 뿐이다.

      



바로크 시대와 벨라스케스의 환영


바로크 시대는 연극의 시대였다. 예술가들은 그럴듯한 가상세계를 만들고 관람자들을 초대했다. 카라바조, 베르니니, 루벤스 등 거장들은 가톨릭 세계에서 활동하며 반종교개혁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관람자의 마음을 흔들어 종교적 감성을 끌어올리는 그럴듯한 환영이었다. 그들의 작품이 그렇게 강력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붙잡은 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구현했던 완전하고 견고한 세계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세계이자 하나의 허상으로 막이 내리면 끝나버릴 연극이었다.


한편 바로크 시대는 과학 혁명의 시대였다. 뉴턴은 물질세계가 신의 의지가 아니라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했고,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거쳐 자명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의심하고 증명하려는 과학자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보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칼뱅주의가 자리 잡은 네덜란드의 화가들에게 이런 경향이 강했다. 그들은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나 성인들의 믿을 수 없는 일화를 화면 밖으로 밀어내고 정물과 풍경, 서민들의 일상과 초상과 같은 객관적인 실체를 화폭에 담으려고 했다. 그런 노력을 끝까지 밀어붙인 렘브란트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도달하는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유럽 예술의 변방,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는 이 둘을 종합했다. 그는 과학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인간의 내면이 아니라 물질세계의 표면이었고, 연극의 한 장면처럼 실재하지 않는 순간적인 허상이었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어느덧 지나가 버린 덧없는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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