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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Apr 21. 2023

로코코, 불안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낙원

화려한 꿈의 세계에 퍼지는 가벼운 웃음소리

로코코 미술은 루이 15세의 치세와 맞물려있다. 왕은 존재하지만 절대 왕정의 위엄은 사라진 시대였다. 이전 황제였던 루이 14세는 태양왕으로 위세를 떨쳤지만 베르사유를 꾸미고 유지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쓰고 치세 말년에는 전쟁까지 일으켰다. 결국 국고는 바닥이 났다. 이후 왕좌에 오른 루이 15세는 겨우 5살이었기에 직접 나라를 통치할 수 없었다. 왕을 대신한 섭정은 오를레앙 공 필리프였다. 그는 정치 중심지를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겼다. 그것은 장엄한 궁정문화의 종식을 의미했다. 이제 더 이상 거대하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을 뒷받침해 줄 후원자는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당연히 예술의 흐름도 달라졌다. 이때 등장한 양식이 로코코다.


실질적인 왕의 부재는 귀족 계급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로코코 양식은 그들의 저택을 장식하는 미술에서 출발했다. Rococo라는 말은 장식을 위해 썼던 조약돌(Rocaille, 로카이유)과 조개 껍데기(coquille, 코키유)에서 유래했는데, 다른 미술사의 용어처럼 당시 예술을 폄하하는 말이었다. 상류층의 유흥과 쾌락을 위한 사치스러운 미술. 정신성을 결여한 장식적인 예술. 이것이 로코코 양식에 가해진 비난이었다. 하지만 비난받았던 모든 양식이 그러하듯 로코코도 그 시대를 대변하는 예술이었다.      




모차르트의 웃음과 꿈의 세계


하얗게 분칠 한 얼굴, 부풀려진 가발, 레이스와 리본으로 장식된 의상. 영화 <아마데우스>(밀로스 포먼  감독, 1984)에 나오는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그림 1]의 겉모습은 화려함을 넘어 과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는 경박스럽게 웃으며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그의 음악은 –적어도 전반부 까지는- 생의 즐거움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 1 밀로스 포먼 감독,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1984출처 : https://miamijewishfilmfestival.org/films/2020/amadeus


로코코 양식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같은 예술이다. 가볍고, 경쾌하고, 화려한 예술. 그것은 진중한 사람들의 눈에는 부도덕하고 상스럽게 보였지만 어느 정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17세기 과학 혁명을 거치며, 신이 사는 천상세계는 인간이 지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뉴턴이 밝혀낸 물리법칙에 따라 돌아가는 우주에는 신의 자리가 없었다. 신이 사라져 버리자 인간에겐 자유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으로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상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향락과 쾌락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간은 지상세계에 대한 자신의 인식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경험은 순간순간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내일이면 거짓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식의 발판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불안해졌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 역시 불안정한 내면을 갖고 있다. 밝은 음악이 멈추고, 파티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된 모차르트는 때때로 공허함과 불안을 느낀다. 그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던 ‘신과 같은 아버지‘는 사라졌다. 그는 모든 것은 홀로 견뎌야 한다.


로코코 양식은 모차르트처럼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다. 그들에게는 안전하고 밝은 안식처가 필요했고 로코코 미술은 그런 세계를 만들었다. 현실에서 발을 떼고, 무책임하고 가볍게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꿈의 세계. 모두가 그것이 덧없는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그곳으로 도피했다.      




우아한 향연의 쓸쓸함

그림 2. 부셰, <가을의 전원>, 1749, 캔버스에 유채, 260 x 199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로코코가 만들어낸 불안한 영혼들의 안식처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우아한 연회)[그림 2]였다. 그것은 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향연이나 음악을 즐기는 연인들을 그린 그림으로 매우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났다. 이런 그림에 대해 후대 지식인들의 비난은 매서웠다.


“전원적이란 것이란 애당초부터 하나의 허구요 유희적인 변장이며, 천진함과 단순성이라는 목가적 상태에 대해 단지 추파만 던지다 마는 교태가 아니던가? ... 그것은 문명의 혜택을 그대로 누리면서 그 질곡으로부터의 해방도 약속해 주는 상태에 자기가 있다고 상상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아르놀트 하우저


삶의 고통과 괴로움이 가려진 시간, 그것은 분명 허구다. 하지만 장 앙투안 바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는 이런 가상의 세계에 진실을 새겨 넣었다. 이 장르에서 단연 돋보이는 바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그림 3]를 살펴보자.


그림3. 바토,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1717, 캔버스에 유채, 129 x 194 cm Musée du Louvre, Paris


전설에 따르면 키테라섬은 물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비너스  숭배의 중심지다. 바토는 이곳을 사랑의 황홀한 유희가 벌어지는 장소로 선택했다. 음악과 춤, 사랑의 밀어가 낮 동안 섬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화가는 그림의 시간으로 가을 해질녘을 선택했다. 지는 해가 섬과 대기를 물들인다. 향락은 끝났고 모두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한 쌍의 연인이 시간을 잊은 듯 비너스 조각 상 옆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지만 그들도 곧 사랑의 행위를 멈춰야 한다. 바토는 이렇게 삶의 기쁨을 우아하고 세련되게 보여주면서도 그것은 허구이며 지는 해처럼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일깨워주고 있다. 사랑은 허무하고 즐거움은 덧없다는 것을!




예술을 위한 예술


바토의 우수 어린 그림들은 당시에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공허해진 사람들은 삶의 덧없음을 직시하기보다 즐거움을 줄 그림들을 찾았다.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는 그들의 요구에 맞는 그림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의 주 고객은 자유주의적 궁정인사와 신흥 부자들이었다.  


그림4. 부셰, <목욕하는 다이아나>, 1742, 캔버스에 유채, 56 x 73 cm, Musée du Louvre, Paris


<목욕하는 다이아나>[그림 4]는 분명 그들의 눈요기를 위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여신 다이아나가 사냥과 달의 여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화살과 초승달 모양의 머리장식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림은 여신과 관련된 어떤 신화도 전하고 있지 않다. 여신은 바로크 시대보다 날씬해지고 어려졌으며 보다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신의 이름은 여성 누드를 그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림5. 프라고나르, <그네>, 1767, 캔버스에 유채, 81 x 64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의 <그네>[그림 5]는 당시 미술의 주요 고객층의 취향을 짐작케 한다. 그네를 타는 젊은 여인이 치마를 펄럭이며 덤불 속에 숨은 연인에게 신발을 날린다. 남자는 여인과 시선을 교환하며 웃는데, 그녀의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네를 당기고 있다. 이 그림은 당시 공공연하게 만연했던 연애 풍조를 대변한다. 그림의 주제는 부도덕하지만 그림은 사랑스럽고 경쾌하다.


 부셰의 관능적인 그림이나 프라고나르의 경박한 유희는 바토의 그림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은 신이 사라지고 왕도 유명무실해진 사회를 그저 즐길 뿐이다. 그렇게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정치적 이념도 없고 영혼의 안식처가 사라졌다는 불안도 없다. 이점이 우리 시대와 통한다.


그림6. 부셰,  <피에로 질>, 1718-20, 캔버스에 유채, 184,5 x 149,5 cm Musée du Louvre, Paris


우리 시대도 로코코 시대처럼 행복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삼고, 신념보다는 기쁨을 추구하며 산다.


그런데 위대한 화가 바토는 그런 시대가 안고 있는 근원적 불안과 우울을 보았다.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멍하니 서 있는 <피에로 질>[그림 6]은 쾌락의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알고 있다. 우리 눈에 그가 애잔해 보이는 것은 우리도 그와 같은 공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피에로처럼 적당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웃으며 살아야 하는 우리도 뒤돌아서면 그와 같이 우울과 고독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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