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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Feb 12. 2023

수영- 물속에서 하는 걸음마

태어난 지 10개월 차. 아이는 익숙하게 기어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 소파를 잡고 옆으로 옆으로 꽃게처럼 걷던 아이의 눈에 보행기가 들어온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입을 꾹 다무는 아이 볼에 보조개가 깊이 파인다. 집중할 때 보이는 아이의 습관이다.


결심이 끝난 아이는 소파를 잡던 손을 놓고 보행기를 향해 한걸음 내디뎌 본다. '흔들' 몸이 작게 흔들린다. 휘청이는 게 대수겠는가. 아이는 양팔을 벌려 '착' 중심을 잡고 숨을 고른다.  내친김에 다른 쪽 다리도 내디뎌 본다. '척' 단단한 종아리가 바닥에 닿는다.

생애 첫걸음. 성공의 기쁨은 달콤하다. 아이는 두 개 빼꼼 나온 토끼 앞니를 드러내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자. 이제 보행기까지 남은 거리는 한걸음. 


아이의 진지했던 도전은 ‘콩’ 엉덩방아와 함께 끝이 난다. ‘으앙’ 손에 닿을 것 같은 보행기를 눈앞에 두고 실패라니.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나는 억울하고 서글픈 아이를 안아 올리며 성공한 첫걸음을 축하해 준다. 대견한 나의 딸. 이제 아이의 세계는 한 뼘 더 커졌을 것이다.



수영장 난간에 걸터앉아 발차기 연습을 한다. 물밖로 나온 수영복은 몸에 딱 붙어 뱃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창피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두툼한 다리가 보일 세라 힘껏 발차기를 한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 다리에서는 자신을 놓아달라 아우성이다. 회원들  얼굴이 일그러지자 선생님은 지상 연습을 끝내고 물안으로 데려오신다.

천장까지 물이 튀도록 힘차게 발차기를 하는 사람, 물 위에 뜨지도 못해 발이 보이지도 않는 사람. 정답은 하나인데 오답은 늘 다양하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엉망진창 발차기를 하고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쉰다.


"허벅지 안 움직이고 종아리만 움직여서 걸어요? 허벅지에 힘주고 발차기 시작하세요!"

종아리로 걷는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져 웃음이 터진다. 우리는 허벅지로 물을 힘차게 차내며 수영의 기본걸음을 배운다.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의 발차기를 해야 할까? 내딛는 한걸음에도 의심 가득이다.


제자리 연습이 끝나면 킥판 차례다. 킥판에 의지해 몸을 떠올리고 발차기를 시작한다. 앞으로 쭉쭉 나갈 것 같은 킥판 연습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힘차게 다리를 휘저어 보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나는 선생님께서 당부했던 모든 문장을 거스르는 듯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은 굽혀지고 허벅지에는 힘이 빠진다.  

이상한 자세로 25M를 어찌어찌 지나온다. 걷는 것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헤엄쳤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출발선은 저 멀리다. 산 정상에 오른 듯 기쁘다.


반가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신호다. 시계를 보니 50분이다. 강습은 끝이 났다.

물속에서 걷는 방법을 모르는 나는 늦은 걸음마 연습에 녹초가 된다.





걸음이 서툴러 서글픈 나의 도전은 내가 대견해해 주기로 다짐한다. 비틀비틀 그러다 걷게 되고 뛰게 되었던 나의 아이처럼. 나도 차근히 차분히 도전해 보련다. 첫걸음. 내 세계도 한 뼘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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