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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Apr 25. 2024

[석혜탁 칼럼] 홍세화, 똘레랑스부터 겸손까지

‘겸손’ 두 글자를 남기고 눈을 감은 홍세화의 명복을 빈다

[석혜탁 칼럼] 홍세화, 똘레랑스부터 겸손까지

- ‘겸손’ 두 글자를 남기고 눈을 감은 홍세화의 명복을 빈다


홍세화가 떠났다. 


그는 낯선 타국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겪은 일과 얻은 통찰을 묵직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직조해 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를 두 번이나 입학했을 정도로 수재였던 그는 꽤 오랜 세월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가 ‘똘레랑스(관용)’라는 키워드를 한국 사회에 제시한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똘레랑스는 사라졌다. 정치가 됐든, 경제가 됐든 극단으로만 치닫는 이 사회에서 똘레랑스가 자리할 공간은 넓지 않다. 


홍세화는 똘레랑스가 앵똘레랑스(불관용)를 용인하는 순간 사라진다고 말했다. 앵똘레랑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적대, 부정, 시기, 모략, 음해, 비방의 목소리와 시선이 이성과 배려, 존중을 잡아먹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똘레랑스는 사라졌다. 정치가 됐든, 경제가 됐든 극단으로만 치닫는 이 사회에서 똘레랑스가 자리할 공간은 넓지 않다.


그의 부고를 접한 후 필자는 아주 오래전 학교 앞 헌책방에서 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한참 찾았다. 샀을 때부터 이미 낡았던 그 책의 오래된 질감이 유독 그립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파란 표지의 헌책은 행방불명되었다. 


'파리'보다는 '빠리', '톨레랑스'보다는 '똘레랑스'라고 표기해야 제맛(?)이 난다. 


홍세화는 작가이자 언론인이었고, 정치인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여기서 그의 정치적 지향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자 한다. 내게 홍세화는 문필가로서의 색이 짙다. 그의 글은 건강한 한식 같았다. 정갈하고 맛있었다.


그는 한 강연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는 것. ‘독서-풍요’는 꽤 들어본 말 같은데, ‘글쓰기-정교’는 적이 낯선 조합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생각은 다 안갯속에 있다. 글쓰기를 통해 그 생각을 정리하고 되짚어보고 그것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가질 수 있다.” 홍세화의 말이다. 그가 왜 ‘정교’함을 언급했는지 이제 조금씩 알 것만 같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못 찾았지만, 그가 편집위원을 지내며 펴냈던 잡지 <아웃사이더>는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또한 헌책방에서 집어 올린 ‘고문서’다. (20대 초반 필자는 진보, 보수를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똥철학’ 아래 매우 넓은 이념 스펙트럼의 책들을 찾아다닌 바 있다.)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홍세화, 이제 그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통탄스럽다. 


홍세화가 편집위원을 지내며 펴냈던 잡지 <아웃사이더> © 석혜탁 촬영


그와 마찬가지로 운전대를 잡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빈 적이 있던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홍세화에게 어떻게 살면 좋을지 질문한다. 참고로 홍세화는 <대리사회>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자발적 경계인이 몸의 언어로 쓴 (이) 책”이라는 평과 함께.


홍세화는 <대리사회(김민섭 저)>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그는 <대리사회>를 가리켜 “자발적 경계인이 몸의 언어로 쓴 책”이라고 표현했다.


홍세화는 대답한다. 겸손이라고. 참으로 간명하다. 


아직 그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았는데, 그는 ‘겸손’ 두 글자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1990년대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 열풍이 불었던 것은 그만큼 서로에 대한 관용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겸손도 언제부터인가 참으로 보기 드문 덕목이 됐다. 겸손한 대화, 겸손한 태도, 겸손한 문장, 겸손한 생활이 참으로 희소하다.


똘레랑스부터 겸손까지. 우리가 직면한 고민과 갈등에서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의 이름 ‘세화(世和)’는 ‘세계평화’의 의미를 담아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이름처럼 평화롭게 잠드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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