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준이 너 이 자식, 니 엄마 상중인데 사망신고를 해? 너 말해 봐. 왜 이렇게 빨리 사망신고를 했어? 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아님 니 엄마 죽기를 바란 거야?"
벼락 같이 큰 소리가 장례식장의 고요함을 깼다.
사망신고 일찍 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혹은 사람이 죽기를 바라여 사망신고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지도 않는다.
동준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간곡하게 말로 설득하고 있다.
"아니요 삼촌, 형사가 어머니 금융기록을 뽑아 보내라고 해서요. 그래서 은행에 갔는데 개인정보 보혼가 뭔가 때문에 어머니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들이라도 못 뽑는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경찰이 해야지 니가 왜 해? 너 거짓말하고 있지? 내가 경찰한테 다 물어볼 테니 거짓말 말어! 말해 봐, 왜 사망신고를 했어?"
"형사가 안 하고 저한테 금융기록 가져오라고 한건 저도 이상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머니 사건을 맡은 사람이 하라면 해야지 어떻게 해요."
'도대체 사망신고 한 걸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야?' 동준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동준의 어머니가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슬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외삼촌이란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가 아니라 외삼촌의 행패 때문이다.
소리소리 질러대던 태수의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이 씨, 저 녀석 때문에 일이 어렵게 꼬여가네..."
"여보 그럼 이렇게 앉아 있을게 아니라, 당신이 집에 한 번 가 봐."
남편 태수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그의 아내가 태수의 속내를 눈치챈 듯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태수의 얼굴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조금 펴졌다.
"오케이. 당신도 같이 갑시다. 두 사람이 뒤져야 하나라도 더 건지지"
"알았어요. 동준이한테 이야기 잘 해요."
태수는 자리를 털고 동준에게 향했다. 그리고 일부러 더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동준이 너 이 새끼, 여기 잘 지키고 있어. 문상객들 올 테니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 하지 말고. 난 니네 집에 좀 다녀오마."
"무슨 소리세요 삼촌. 오늘이 첫날인데 어딜가신다고요. 그리고 집은 경찰들이 못 들어가게 뭐 쳐 놨어요. 수사하려면 아무것도 건드리면 안 될 텐데 가서 뭐 하시려구요."
"너 이 자식 끝까지 어른한테 말대꾸야? 그럼 빈집에 현금이며 통장을 그냥 두란 말이야? 내가 다 알아서 챙겨준다는데 어린놈이 웬 참견이야?"
현금과 통장이라는 말에선 조금 소리를 낮추는 태수. 남이 들을까 눈동자로 좌우를 한 번 살피기까지 한다.
동준의 어머니는 2대째 사채업과 숙박업을 하는 지역의 유지였다.
동준의 할머니는 전쟁 이후 남한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쟁통에 남편은 죽고 자신이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돈 버는 법을 처음으로 배워야 했던 그는 불법적인 일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밀주를 시작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해서 결국엔 사채업과 숙박업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머니 덕분에 부유하게 자란 삼촌 태수는 거칠 게 없는 망나니 도련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담임선생님을 폭행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마저 두들겨 팬 위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담임과도, 경찰과도 원만히 합의가 되어 모든 일을 덮기로 하였고 감옥에는 가지 않았다.
다만 그 뒤로 동준 할머니의 눈 밖에 나서 사업의 대부분은 동준 어머니가 이어가게 되었다.
"에이씨, 동준이 그 새끼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일일까? 이 자식 전부 자기가 먹으려고 한 거 아냐?"
"여보 당신 어머니 치매로 입원하셨을 때 모텔이랑 땅들은 당신 명의로 옮겨 놨었잖아요. 그때 현금은 누가 챙겼어?"
"말도 말어. 동준이 애미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잘 알잖아. 동준 애미랑 나랑 죽도록 집을 뒤졌었거든. 나도 운이 좋아 건물 몇 개 건진 거지 알짜배기 건물, 땅이랑 현찰 같은 건 동준 애미가 거의 챙겼을걸? 하.. 근데 이번에 동준이 저 자식이 사망신고를 빨리 하는 바람에 땅이랑 건물은 손을 못 대게 생겼으니..."
"그럼 어떻게 한대? 지금 집에 가봤자 가져갈 거 없는 거 아냐?"
"일단 당신은 집에 가자마자 현금하고 패물 찾어. 사채 하던 사람이니 현금이 많을 거야. 난 돈 빌려준 증서들 찾을 테니까. 그거 가져다 돈 빌린 놈들한테 반값에 없애준다고 하면 다들 돈을 내놓을걸?"
"무슨 소리야? 돈 빌려준 종이로 어떻게 돈을 받아? 우리가 빌려준 것도 아닌데?"
"어허. 이 답답한 사람. 만약 차용증이 동준이에게 상속돼 봐. 천만 원 빌려간 사람은 고대로 천만 원을 동준이에게 갚아야 해"
"그렇지?!"
"근데 우리가 가서 차용증을 챙겨 버리면 동준이는 지 애미가 얼마를 빌려 줬는지 모른단 말이지. 그리고 돈 빌린 사람한테 가서 '너 동준이한테 천만 원 갚을래? 우리한테 오백만 줄래? 오백만 원이면 보는 앞에서 차용증 찢어줄게'하고 말한단 말이지."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역시 아내는 바보라고 태수는 생각했다. 그리고 태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현금을 찾으라고 했지만 남아있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도가 자기 아내만큼 바보가 아니라면 모두 챙겨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차용증과 패물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것은 처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차용증 10억만 발견해도 태수는 8억 정도는 챙길 자신이 있었다.
아내에게는 5억 받았다고 이야기하면 3억 정도의 비자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장물아비를 알고 있는 전문 강도가 아니라면 패물을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
낮에 경찰이 하는 말을 들으니 초짜의 소행 같다고 했다.
그러니 패물도 가져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내가 패물 몇 개라도 발견해 준다면 아내의 소임은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쳐서 10억만... 제발 10억만...'
태수는 동준네로 가는 차 안에서 계속 생각했다.
10억만 있으면 자신의 어머니처럼, 동준 엄마처럼 사채업을 하며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차는 어느새 사건 현장이자 동준네 집인 그곳에 도착해 있다.
마치 집 전체를 택배처럼 포장해서 들고 가려는지 노란 폴리스라인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하... 이 무능한 경찰 놈의 새끼들... 이런 건 야무지게도 둘러놨네."
태수는 현관에 걸린 폴리스라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까짓!'하고 말한 뒤 노란 테이프를 아무렇지 않게 뜯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에는 12시가 다 넘어서야 하나, 둘씩 문상객들이 모여들었다.
보통이면 회사가 마치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 모여들기 마련인 문상객들이 단체로 지각이다.
"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것보다 가서 뭐라고 말을 하면서 조문을 하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비슷한 고민들을 가진 문상객들이다. 그러한 망설임이 한참을 시간을 끌고서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바쁘신 중에 이렇게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준 입장에서도 이제 차차 상주의 말투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동준이 너 이 새끼! 나와!"
외삼촌 태수의 고함이 또다시 장례식장의 고요를 찢어버린다.
"나와 이 자식아! 너 패물 어쨌어? 패물!!!!?"
동준은 화 나는 감정보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대답도 못한다.
"내가 누님 살아생전 본 금목걸이, 반지가 몇 개인데, 집에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어? 니가 다 빼돌린 거지?"
"삼촌 진정 좀 하세요. 여기 장례식장이에요."
주먹에 힘을 꽉 주고 있지만 상주로서의 도리가 머리에 맴도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동준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이 자식! 착한 아들인 척, 인격자인 척 다 하지만 내 이럴 줄 알았어."
태수가 소리를 지른다. 처음 식장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동준이 살인범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이다.
"지 엄마 죽은 지 하루도 안 지나 사망신고를 해?! 그리곤 뒷구녕으로 패물 하고 차용증을 빼 돌려?"
"삼촌!"
"니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어? 그 애미에 그 아들이라고 하는 짓이 어째 똑같아?!"
"삼촌, 나가세요!!!! 여기 어머니 장례식장이에요! 여기서 어머니를 모욕하다니 아무리 삼촌이라도 참을 수 없습니다!!"
"오냐 나가마! 사람 새끼도 아닌 놈과 일분도 같이 있기 싫다!"
태수는 씩씩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의 아내는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사이 태수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홀로 병원마저 떠나버렸다.
"이 새끼 어디서 사람을 물로 보고. 애미나 새끼나 사람을 졸로 보는 게 아주 글러먹었어"
태수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운전을 한다.
"2억? 2억밖에 차용증이 없다니, 말이 안 되잖아. 분명 동준이 녀석이 빼돌린 거야"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 손에는 장례식장에서 챙겨 온 소주병을 든다.
"패물이 하나도 없다는 게 증거야. 분명히 동준이 자식이 되는 대로 챙긴 게 틀림없어."
이야기 상대도 없는데 떠들어 대는 태수. 그래서 목이 타는지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화가 날대로 난 태수는 차 안에서 '한 놈만 걸려라'는 마음으로 거칠게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걸린 한 놈이 하필이면 경찰이다. 태수의 백미러로 파란색 빨간색 경관등이 번쩍인다.
"아휴 열불 터져. 되는 일 하나도 없네."
거칠게 소리쳐 보지만 몸은 반대로 다소곳한 자세를 취한다. 한갓길로 두 차는 세워졌다. 경찰 하나가 걸어오는 모습이 사이드미러로 보인다. 태수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하'하고 바람을 불며 코를 킁킁댄다. 이 정도면 술냄새는 괜찮을 듯도 싶다.
"수고하십니다. 어디 급하게 가세요?"
"아, 예. 좀 급한 일이..."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붙이며 얼굴을 경찰에게 돌렸다.
"어!? 태수 형님 아니세요?"
"어, 어! 광렬이구나. 니 형님은 잘 지내시고?"
"예, 형님. 잘 지내시죠. 에이, 형님 술 드셨구나."
"아니야 인마. 술은 무슨..."
"아니 뭐 형님인데 제가 잡아가려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니깐 이 녀석이 형한테 트집은."
"아이고, 알았아요. 그냥 저희 관할 밖에서만 걸리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저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알았다. 고마워. 너도 알잖냐. 우리 집에 무슨 일 있었는지. 내가 하도 원통해서 그냥 좀..."
누이 잃은 원통함을 제법 잘 연기하는 태수였다.
"그럼요, 형님. 어디 가시는지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아! 아니야, 나 운전할 수 있어."
태수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50년을 알아온 친구의 동생이 광렬이다. 그런데도 그가 경찰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섬뜩한 기분이 들며 술이 다 깼다. 함께 경찰차를 타고 동준이네 도착하면 찢긴 노란 테이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광렬이는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고, 태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제발 돌아가라. 제발 이만 돌아가라.' 태수는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알았어요, 형님. 운전 천천히 하시고 일 정리되면 저희 형이랑 다 같이 술 한 잔 해요."
"그래, 광렬아. 수고해."
태수는 차를 최대한 천천히 출발하며 흘끗 백미러를 보았다. 광렬이 차문을 닫는 것이 보였다.
"하. 병신 새끼. 어렸을 때에는 말도 못 붙이던 놈이 경찰 됐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꼴이란."
경찰차가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자 태수는 다시 속도를 올리며 소주병을 붙잡았다.
'소주를 더 챙겨 왔어야 하는데...'
동준의 집을 뒤지던 태수는 문득 갈증을 느꼈다.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은 소주 한 모금을 더 갈망하게 만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누이는 진양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알부자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서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경찰은 분명 초짜의 범행이라고 했다. 그 초짜가 모든 것을 털어 갔을 리 없다.
역시 동준인가? 태수는 세 병째인 소주의 마지막을 입에 털어 넣었다.
"우라질 놈의 자슥아!"
태수는 소주병을 벽에 던졌다.
"망할 놈의 자식, 죽여 버리겠어!"
역시 동준이다. 그가 맞다. 그가 아닐 리가 없다.
"네 놈 자식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꼬여 버렸어!"
자신이 사업을 말아먹을 때마다 죽지는 않게 돈을 보태주던 누이다.
술이 취해 주먹으로 으름장을 놓으면 심심치 않게 돈을 내어주던 누이다.
태수가 술을 마시게 된 것도, 주먹질을 하게 된 것도 누이 때문이고 돈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
처음 누이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태수는 떨려오던 가슴을 잊을 수 없다.
'그래, 나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쥐꼬리 만한 돈이나 챙기란 법 있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누이가 했던 것처럼 몽땅 내 앞으로 돌려놓으면 그게 바로 인생역전이지!'
그렇게 부푼 맘을 가지고 뒤진 보물창고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갈증이 난다. 소주가 세 병쯤이면 이미 술이 사람을 마신다.
"냉장고에 소주 한 병쯤은..."
태수는 비척비척 주방으로 갈 생각으로 방을 나섰다.
아까 방 밖으로 던져버린 소주병은 거실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바닥엔 소주병 파편이 널브러져 있다.
전등 스위치를 몇 번 껐다 켰다를 하다 앞으로 나아간다.
"씨... 맞아도 하필 전등에."
신발을 신었음에도 행여 발을 다칠까 뒤뚱뒤뚱 조심스럽다.
커다란 유리병 조각을 피해 비틀거리다 주방의 한쪽 벽면에 손을 턱 하니 겨우 짚어 넘어질 것을 모면하였다.
"자빠지면 큰일 날 뻔했잖아..."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조각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어 쉰 태수.
다시 흔들리는 고개를 들어 냉장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반들반들 반쯤 거울 형태의 냉장고에 핏자국 몇 줄기가 어슴푸레 보인다.
"어? 여기에 왜? 나 어디 베었나?"
몸을 더듬거려도 보고 얼굴을 쓰다듬어도 본다.
딱히 어디에서 피가 나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귀에서 쩍 소리가 잠시 들렸다.
그리고 다시 눈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보인 것은 자신의 목을 밟고 있는 한 사내.
아니 사내라고 보기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의 새끼.
"이 어린 노무.... 시...."
말도 잘 안 나온다.
답답했다.
"이, 이 죽여 버린다..."
태수의 말에 어린 사내는 대답이 없다.
다만 어린 사내가 떠는 것인지 태수가 떠는 것인지, 두 사람 모두 강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태수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그렇게도 원했던 소주가 다시 입안을 채우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