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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창조

결핍은 행위의 시발점

by sleepingwisdom

결핍은 창조의 발화점이다

: 욕망과 몰입, 그리고 초점이 만든 진화의 흔적들

마트 앞에서 망설이는 대신, 어떤 이들은 그 시간에 실험을 시작한다. 오늘 저녁 반찬을 고민하기보다, 지금 당장 그 반찬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 방법을 고민한다. 단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결핍이 만들어낸 구체적인 몰입의 순간이다.



우리는 종종 결핍을 ‘터널’로 비유한다. 시야를 좁히고, 생각을 단순화시키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위험한 심리 상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터널 속에서 불을 밝힌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이다.



욕구불만, 그 위대한 불씨

무언가가 없다는 감각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바로 그 고통이 ‘욕망’을 낳는다. 그리고 그 욕망이야말로 인간이 진보하게 만든 진짜 원동력이다. 갈증이 샘을 찾게 만들고, 허기가 농사를 시작하게 했다. 허기진 뇌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을 계속해서 보내며, 현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유도한다.



창조는 넉넉함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에디슨은 촛불이 아닌 전구를 발명했고, 라이트 형제는 편안한 마차 안이 아니라 흔들리는 하늘을 상상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결핍. 욕구불만은 파괴적인 감정이 아니라, 혁신적 에너지다.



우리는 불편할 때 더 민감해진다. 추울 때 난방 기술이 발전하고, 불안할 때 예술이 시작된다. 그 모든 욕구불만은 지금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만약 모두가 만족하고 안정만 추구했다면, 인류는 불을 피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터널은 곧 초점이다

터널링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만 쓰이는 것은 어딘가 아쉽다. 터널은 확실히 시야를 좁힌다. 하지만 때로, 그 좁은 시야가 집중력을 만든다. 한 가지에만 깊게 파고드는 힘. 그 힘이야말로 전문가를 만들고, 장인정신을 낳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가난했고, 인간관계에도 결핍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하나에 몰입했다—빛과 색에. 그의 ‘터널’은 예술의 초점이었다. 바흐의 음악, 파블로 네루다의 시,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모두 결핍된 환경 속에서, 좁은 시야로 몰입한 결과다.



결핍이 모든 창조의 시작점이 되는 이유는, 선택지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풍요는 종종 사람을 산만하게 만든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반대로 선택지가 적을수록,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되고, 그 집중이 몰입을 낳고, 몰입이 탁월함을 만든다.





여유는 넓지만, 창조는 좁다

많은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그림을 그릴 거야”, “시간이 있으면 글을 쓸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유는 대부분 창조의 적이다. 너무 많은 자원은 발상을 흐리고, 성실한 시행착오를 줄인다.




결핍이란 긴장을 낳는다. 그리고 그 긴장은 뇌를 활성화한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삶의 불균형이 오히려 더 정교한 사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리정돈이 안 되는 공간에서 정리도구를 고안하는 사람, 출퇴근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시간 관리에 능숙한 사람. 그들은 불편함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전략'을 스스로 개발한다. 그리고 이 전략이 바로 창의적 시스템의 기원이다.



결핍은 정체가 아니라 진화의 조건이다

자연은 늘 결핍 상태였다. 사막에서는 적은 물로 생존하는 선인장이, 추운 지방에서는 지방을 저장하는 북극곰이 진화했다. 생명체는 결핍 앞에서 적응하고, 진화하며, 생존을 새롭게 디자인해왔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결핍에 반응해 새로운 능력을 길러왔다. 감정적으로 결핍된 사람은 더 섬세한 감각을 가지게 되고, 사회적으로 결핍된 사람은 더 독창적인 내면 세계를 구축한다. 결핍은 무기이자, 도구다. 고통스러운 동시에 확장적이다.


진짜 문제는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고정된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나는 돈이 없어서 안 돼”, “나는 바빠서 꿈을 미뤄야 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결핍은 굳어지고, 가능성은 닫힌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결핍은 변화의 근거가 된다.



부족한 자들이 만든 세상

우리는 모두 어떤 결핍을 품고 살아간다. 완전히 채워지는 순간은 없다. 하지만 결핍은 결코 나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결핍이야말로 내 고유한 방식의 ‘해결력’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결핍 덕분에 질문한다. 그리고 질문하는 존재만이 발전한다. 욕구불만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터널 같은 시야에 갇혔다고 자책하지 말 것. 오히려 그 터널이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돌파하게 만든 통로가 될 수 있다.


모든 창조는 ‘불편한 지금’에서 시작한다. 만족한 자는 창조하지 않는다. 고통받은 자, 불편한 자, 원한 자들이 세상을 다시 썼다.




결핍은 방해물이 아니다. 그것은 흔들리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한 자들만이 새로운 세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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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오지 않아도 산은 들었다』 글과 그림으로 엮은 조용한 응답의 책


태백산의 침묵 속엔 아직 호랑이의 숨결이 살아 있다.
『신이 오지 않아도 산은 들었다』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양심의 소리를 따라, 삶의 방향을 묻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림과 문장이 조용히 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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