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시리즈 시작 : 소통의 창구
불빛이 어른거리는 동굴 안, 네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말은 없다. 서로의 얼굴을 천천히 훑는 눈길과, 깊어지는 침묵만이 깔려 있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들고, 앞사람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물음이 있다. "지금, 괜찮은가?" "함께할 수 있는가?" "두렵진 않은가?"
상대는 잠시 숨을 멈추고,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안에 모든 대답이 담긴다.
이해는 그렇게 시작됐다. 말보다 훨씬 전에. 눈빛이 먼저였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딱 보면 아는 사람. 말을 건네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생각이 따라오기도 전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 모든 건 눈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눈빛은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춘다. 거기엔 감정뿐 아니라, 신념, 에너지, 지나온 시간의 무게까지 있다. 한 사람의 눈빛을 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건 논리가 아니다. 그건 감각이고, 기억이고, 본능이다. 눈빛은 언어로 해석되기 전에 이미 가슴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눈을 보면 안다'는 말은 거짓일 수가 없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도 눈빛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눈을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안에 자신이 비친 것을 보는 듯한 기분. 그 사람의 마음이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확신.
그저 그 눈빛에 꽂히는 순간이 있다. 그건 낯선 것을 향한 용기이고, 의심 없이 다가가려는 감각이며, 내 안에 숨겨뒀던 믿음을 꺼내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다.
연인 사이의 진짜 감정은 많은 말보다, 눈빛 하나로 확인되는 경우가 더 많다.
입술보다 눈이 먼저 닿고, 손보다 눈이 먼저 설렌다. 눈빛은 말이 닿지 못하는 가장 깊은 곳까지 닿는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눈빛으로 도약하는 것일지 모른다.
말은 위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다. 슬픔, 질투, 외로움, 기대. 어떤 것도 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눈을 피한다. 진심이 들킬까 봐, 감정이 들통날까 봐. 말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눈빛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눈빛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런 사람 앞에 서면 마음이 벌거벗겨지는 기분이 들지만, 그게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숨길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
눈빛은 위험하면서도, 가장 진실한 통로다.
고대의 사람들은 눈빛 하나로 사냥을 나섰고, 눈빛으로 생사를 걸었으며, 눈빛으로 서로를 지켰다.
그들에겐 손의 떨림, 숨소리의 변화, 어깨의 기울어짐까지도 눈빛과 연결된 하나의 신호체계였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 때, 그 손끝의 온도를 먼저 확인하는 건 눈이다.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것도, 함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도, 결국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몸의 모든 언어는 눈빛이라는 중심을 돌며 의미를 갖는다.
터치는 눈빛의 연장이고, 목소리는 눈빛의 울림이며, 움직임은 눈빛의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연결이 끊어졌다. 눈을 보지 않고 화면을 보고, 감정을 말로 설명하려 들고, 때론 감정을 감추는 법을 더 먼저 배운다. 그래서 점점, 진심이 오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사람을 눈으로 느낀다.
그의 말보다, 표정보다, 옷차림보다 먼저 눈을 본다.
깊고 조용한 눈빛에 이끌릴 때가 있고, 반짝거리는 눈빛에 갑자기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눈빛 앞에서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싶어진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잃고도, 마음은 여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그 눈빛이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진짜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는 그 사람의 눈이 자꾸 떠오른다.
웃을 때의 눈빛도 슬플 때의 눈빛도.
눈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건강과 감정상태 그리고 의식상태까지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이해하거나 분석하지 않아도, 그저 '알 것 같은' 느낌.
그건 눈빛의 힘이다.
그 힘은 설명을 거부한다. 왜 그런지 묻는 순간, 그 마법은 사라진다. 눈빛은 논리 이전의 감각이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잃기 쉬운 언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언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눈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고,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는 모든 게 간단해진다.
말이 필요 없다. 눈빛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