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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몸의 언어시리즈2

by sleepingwisdom

"손이 말하던 시절"

말보다 먼저, 손이 들렸다


사람이 말을 갖기 전에 먼저 가진 것은 손이었다.

손은 도구였고, 무기였고, 동시에 마음을 드러내는 창이었다.

입이 닫혀 있는 동안, 손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살아야 했던 시간, 두려움이 깃든 눈빛 위로 조용히 손을 들어 보이는 일은 그 자체로 언어였다.


“나는 적이 아니다.”

“같이 가자.”

“조심해.”

이 모든 메시지는 음성 없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손짓은 그렇게, 마음과 생존 사이를 연결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넘기는 무심한 손동작 하나하나는, 사실 아주 오래된 감각의 잔재일지 모른다.




무드라: 손의 상징이 된 순간


불교나 인도 전통에서 흔히 등장하는 ‘무드라(수인)’는 손의 위치와 형상을 통해 상징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 무드라는 의식보다 일상이었고, 체계보다 감각이었다.


예컨대 ‘아바야 무드라’ —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향하게 하는 동작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괜찮아, 해치지 않아”라고 말할 때 자연스레 따라 나오는 제스처다.

‘지안 무드라’ —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편 형태는 명상이나 기도뿐 아니라, 집중할 때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우리의 습관 안에도 스며 있다.


그 형상들은 우주의 진리나 자아의 깨달음을 담는다고 말하지만, 그 시작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몸의 언어였다.

즉, 무드라는 철학이 되기 전,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의 기호였던 것이다.





제스처, 아직도 남아 있는 언어의 흔적


손짓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누군가를 부를 때, 말없이 손을 흔든다.

말을 막고 싶을 땐, 손바닥을 펴서 “잠깐”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의심할 땐 손가락을 턱에 대고, 생각할 땐 손으로 턱을 괸다.

놀람은 입보다 먼저 손이 뺨을 감싸고, 반가움은 입보다 먼저 손이 뻗는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손짓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건 사회의 약속이기 이전에, 몸이 기억하는 공통 감각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문화권을 달리해도 유사한 손짓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기를 안을 때 두 손을 오므리는 모양, 경계할 때 손바닥을 세우는 제스처, 슬픔이나 기쁨에 따라 손이 얼굴을 덮는 습관 등은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건 언어 이전의 언어, 즉 보편적인 신체 감각의 잔재다.





손짓의 본질: 침묵의 의사소통


말은 때로 진심을 왜곡한다.

하지만 손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분노는 주먹으로, 슬픔은 움켜쥔 손으로, 기쁨은 펼친 손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악수’라는 손의 접촉으로 신뢰를 확인하고, ‘포옹’이라는 팔의 동작으로 안심을 준다.

심지어 사랑 고백보다 먼저 손이 닿고, 이별 통보보다 먼저 손이 식는다.


침묵 속에서, 손은 여전히 말하고 있다.

그 침묵은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때로 말보다 손이 먼저 마음을 연다.


그래서일까, 말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먼저 신뢰를 준 사람처럼 느껴진다.





잊힌 언어를 복원하는 일


우리는 손의 언어를 잊어가고 있다.

지금 손은 스크롤을 내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감정의 언어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요즘도 말로는 하지 못하는 진심을,

‘짧은 손짓’ 안에 담는다 —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이거나, 손을 살짝 맞잡는 식으로.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소통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정직한 손짓 하나일지도 모른다.


손은 아직도 진심을 기억한다.

그 기억을 되살리는 일,

그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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