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시리즈4 : 얼굴은 나의 확성기
나는 표정을 숨기는 데 서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찡그리는 얼굴 때문에 주변 어른들의 꾸중을 자주 들었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안 된다.”
하지만 내 얼굴은 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내 마음이 곧바로 피부 위로 올라와 무심한 사람들 앞에 거짓 없이 드러났다.
군대에 가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무서운 감정을 숨기기 힘들었고, 그게 고참들에게 읽혔다.
그들은 나의 표정을 ‘약점’으로 삼아 더욱더 잔인한 괴롭힘의 빌미로 삼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어도 내 이마와 눈썹, 입꼬리, 어깨까지 모두가 나의 속내를 말해버렸다.
그 얼굴을 읽은 고참들은 미소 뒤에 숨은 저항감 혹은 반항심, 거부감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적게 했지만, 표정이 그 모든 걸 대신했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완벽히 컨트롤한다.
기분이 어떻든 그들은 무표정하거나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능력은 사회생활에서 큰 무기가 된다.
감정을 숨기고, 갈등을 피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대립을 줄인다.
그런 사람들은 인정을 받고, 때로는 권력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 표정은 나를 곧바로 드러냈고, 그래서 나는 자주 불이익을 당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얼굴이 나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감추려 해도, 나의 얼굴은 나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가끔 표정을 숨길 줄 아는 사람들이 안다. 그런 사람들을 짧은 직장생활에서 보게 된다.
그들이 가진 그 불가사의한 힘, 즉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는 능력이 참 놀랍다.
누구나 표정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표정을 감춘다는 것은 마음을 숨기는 것이다.
마음이란 본래 흐름을 타고 표정으로 흘러나오는 강물과 같다.
그 흐름을 끊고, 표정을 잠그는 순간 우리는 그 물줄기를 잠근다.
안전해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감금하는 일이다.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힘든 순간마다 나는 얼굴을 감추려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몸은 긴장했고,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표정과 눈빛은 주변에 신호를 보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철저히 보호한다.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적대적 시선에 굴하지 않는다.
그 능력은 분명 필요하지만, 나는 그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잘 안되는 일이기에 배워서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아니었다.
내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데는 다행스러운 이유가 있다.
내 얼굴은 수만 년 전, 말이 없던 고대 인류가 사용하던 가장 오래된 언어와 깊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언어가 발명되기 전, 고대 부족들은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변화만으로 수많은 감정을 전달했다.
공포가 몰려올 때는 눈동자가 커지고 입술이 굳어지며, 근육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사냥에 성공했을 때는 얼굴 전체에 환희가 퍼져, 온 몸의 혈색마저 달라졌다.
경계와 사랑, 슬픔과 기쁨, 모든 감정은 얼굴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 당시 얼굴 표정은 거짓말을 몰랐다.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것은 곧장 얼굴에 투영되었고, 공동체 사람들은 이를 즉각 알아챘다.
위험이 닥쳤을 때 서로의 얼굴을 읽고 피했으며, 기쁨이 넘칠 때 함께 웃으며 연대했다.
이렇게 표정은 말보다 강력한 소통의 도구였고, 공동체를 잇는 진실한 연결고리였다.
나는 지금도 내 얼굴이 그 고대의 언어를 이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내 마음의 감정이 얼굴 위에 새겨질 때마다, 나는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신호를 받는다.
그 신호는 단순한 표정을 넘어, 나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본능적 언어다.
표정은 때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
진심을 숨기지 못한 얼굴은 오해와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표정은 깊은 연결과 이해를 여는 문이기도 하다.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말보다 먼저 다가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 신호를 통해 우리는 상대의 진심을 가늠하고, 진짜 관계를 맺는다.
표정은 거짓을 담지 못하는 가장 순수한 언어다.
그 언어가 주는 고통은, 때로는 진실한 만남을 위한 축복이 된다.
숨겨진 마음이 얼굴에 스며들 때,
그 얼굴은 서로를 향한 신뢰와 이해의 다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