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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주문

by sleepingwisdom

자동주문

테이블에 앉아
나는 메뉴를 바라본다.
서둘러 손을 들 필요도,
종업원의 시선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화면에 손끝을 대면
따뜻한 불빛이 켜지고
나만의 속도로 주문이 흘러간다.
옆자리의 웃음소리에도
내 마음은 조급하지 않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걸음,
기다림의 기척은 사라지고
나는 천천히 고른다.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은 선택,
그 자유가 작은 행복이 된다.

어린 날,
메뉴판을 더듬던 떨림은 사라졌다.
서둘러 대답하던 압박감도
이제는 추억처럼 멀리 흩어진다.

기계는 묻지 않는다.
왜 이 음식을 골랐는지,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지.
그저 묵묵히 받아 적고,
작은 진동으로 답을 건넨다.

편리함은
내 시간을 돌려주는 일.
기술은
조용히 등을 밀어주는 손길.

나는 사랑한다.
기계가 열어놓은
압박 없는 사회,
조용히 흘러가는
여유와 감사의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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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