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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허클베리 핀 이야기

나의 허클베리핀 이야기

by sleepingwisdom

나의 미시시피 강,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그림자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허클베리 핀은 '더글러스 아줌마'의 위선적인 가르침과 '아빠' 핀의 폭력을 피해 미시시피 강으로 도망쳤다. 그에게 강은 문명의 덫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만의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흘러왔다. 나의 강은 맑은 물줄기가 아닌, 차갑고 거친 현실의 급류였다.


어린 시절, 나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멸시와 함께 무당집의 음침한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 문명 사회의 잣대에서 벗어나려 했던 핀처럼, 나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다. 사람들은 그 집을 꺼렸고, 나는 밤마다 공포에 떨며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핀이 그러했듯, 나 또한 그 고립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나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 그 무당집은 겨울이면 방 안에 고드름이 맺힐 만큼 차가웠다. 바람이 숭숭드나드는 천장넘어, 엄마와 나는 연탄난로를 피워 겨우 몸을 녹였다. 연탄가스에 질식해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들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허클베리 핀이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위장했듯,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생존의 방법을 터득했다. 무서운 집 위에서 숨죽여 자는 시간, 나는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투명한 벽을 세웠다.


어머니가 품팔이로 밤늦게 돌아오면, 나는 무서워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봇대에 기대 잠들곤 했다. 그때마다 동네의 '바보아저씨'는 나를 업어 재워주셨다. 모두가 꺼리던 나를 유일하게 안아준 존재였다. 소설 속에서 허클베리 핀에게 도망 노예인 '짐'이 되어준 것처럼, 그 '바보아저씨'는 나의 삶의 외딴 섬에서 만난 작지만 가장 순수한 구원이었다.


그의 품은 세상의 냉대와 공포를 잊게 해주는 따뜻한 뗏목이었다. 나는 그 뗏목 위에서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차가운 강물 속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덫에 걸려버린 뗏목, 반복되는 시련

허클베리 핀은 짐과 함께 강을 따라 내려가며 사기꾼 '왕'과 '공작'을 만난다. 강 위에서 잠시 벗어났던 문명의 위선과 타락이 다시금 그를 덮쳤다. 나의 삶 또한 그랬다. 어린 시절의 결핍을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삶은 핀이 겪었던 곤경만큼이나 거칠었다.


내 몸은 이미 어릴 적 불안과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고혈압과 이완되지 않는 몸은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옥죄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나는 매일 밤 나를 짓누르는 불안과 싸워야 했다. 마치 강 위에서 예측 불가능한 폭풍우를 만나듯, 내 몸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알 수 없는 질병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허클베리 핀이 사기꾼들에게 속아 넘어갔듯,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전 재산을 잃고 살던 집까지 빼앗겼다. 10년 간 열 번이 넘는 이사 끝에 결국 나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 도착했다. 돈도, 기댈 곳도 없는 상황. 마치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난파된 뗏목처럼, 나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허클베리 핀이 왕과 공작을 보며 인간의 위선에 절망했듯, 나 역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더 이상 아무도 의지하거나 믿고 싶지 않았다.



지옥에 가더라도, 나의 동반자 '짐'은 바로 나의 몸이다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허클베리 핀이 짐을 노예로 되돌려 보내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다. 그는 "좋아, 지옥에 가더라도 상관없다!"라고 외치며 사회의 도덕률을 거부하고 자신의 양심을 택한다. 이 순간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사기당하고, 건강을 잃고, 세상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나는 내 삶을 '불운한 피해자의 이야기'로 규정하고 세상의 동정표를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허클베리 핀이 사회가 강요하는 '옳음'을 거부했듯, 나는 내 삶을 불행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세상을 거부하기로 했다.



나는 내 삶의 짐을 끌어안고 지옥에 가더라도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에게 허클베리 핀의 '짐'과 같은 존재는 바로 나의 **'몸'**이었다. 핀이 짐을 통해 진정한 도덕률을 깨달았듯,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통해 삶의 진실을 배웠다.


몸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나침반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이완되지 않는 몸은 나에게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명상을 통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몸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웠다. 몸은 잘하고 못하고의 경계를 넘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가르쳐주었다.



나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겪은 파도 사고는 내 모험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파도에 휩쓸려 대동맥이 파열되고 척추, 어깨, 갈비뼈가 부러졌다.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허클베리 핀이 강물에 몸을 맡기듯,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았다. 육체적 고통은 여전하지만, 나는 다시 재활하며 삶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가는 핀의 모험과 같다. 나는 이제 세상의 동정이나 타인의 도움에 기대지 않는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허클베리 핀은 또 다른 사회의 억압을 피해 "나는 서부로 도망갈 거야. 샐리 숙모가 나를 입양하고 또 다시 문명화시키려고 하기 전에"라고 말한다. 핀의 삶은 한 번의 모험으로 끝나지 않는, 끊임없는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다.


나의 삶 또한 그렇다. 재활을 통해 몸을 회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돈을 벌고,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내는 이 모든 과정이 멈추지 않는 모험의 연속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불운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피해자'가 아닌 '탐험가'로 정의한다.



허클베리 핀과 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그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의 모험은 나에게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핀이 문명 사회의 위선을 거부하고 자유를 택했듯이, 나는 불행의 굴레와 절망을 거부하고 나만의 삶을 택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역경이 나를 기다릴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는 이미 '애비 없는 자식'에서 '애비도 만들지 못한 나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되었고, '무당집의 아이'에서 '나만의 강을 헤쳐나가는 탐험가'가 되었다.


나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내 몸의 목소리를 듣고 내 발로 걸어갈 것이다.

나는 허클베리 핀이다. 그리고 나의 모험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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