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길을 걸으면 성스러워진다고 말한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 치유받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 길들만이 특별한 걸까?
매일 아침 직장으로 향하는 그 익숙한 길은 정말 고난의 길일 뿐일까? 나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길은 결국 마음이 지어낸 길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이 길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 단순한 행위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있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즐겁게 걷는 것, 그것이 바로 비법이다. 평범한 아스팔트 위에서도 황금빛 노을이 스며들고, 바람이 어깨를 토닥이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순간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여행을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사진을 찍기 바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SNS에 올릴 각도를 먼저 생각한다.
그 순간의 에너지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채, 스마트폰 화면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러면 진정한 그 맛과 멋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어야 할 여행이 어느새 남을 위한 시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럴수록 여행은 일이 되고, 또 다른 피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전시물이 된다.
직장에 가는 길도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즐거워질 수 있지 않은가? 매일 걷는 그 길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하늘의 구름이 만드는 그림을 감상하며, 길가에 피어난 작은 꽃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그 길은 더 이상 고행의 길이 아니라 아름다운 길이 된다.
굳이 아름다운 길을 걷겠다고 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까운 공원 산책만으로도 충분하다.
공원이 없다면? 그렇다면 황무지라도 좋다. 자신이 즐겁게 걸어서 그곳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으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의 힘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음미하는 능력이다. 우리의 뇌는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행복을 경험한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 뇌에서는 실제로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행복은 지금 여기서 당장 찾는 것이다. 내면에서 찾는 것이다.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러 다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때로는 또 다른 노동이 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것, 더 특별한 경험을 위해 더 먼 곳을 향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보여주기식 행복에 속지 않는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장소에서 찍은 사진으로 채워진 행복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만의 행복이어야 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가는 그런 행복 말이다. 그 길이 곧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다.
굳이 유명한 곳을 찾지 않아도 된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굳이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문 앞 골목길에서도 마음은 무한히 펼쳐질 수 있다. 동네 개 한 마리와 눈 마주치는 순간도, 길가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평범한 오후도, 모든 것이 선물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움직임이 가장 값진 움직임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다. 내 몸의 감각과 숨을 느끼는 것이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대지의 온기를 느끼고,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드는 기적을 맛보는 것이다. 걸으며 생각하는 나, 걸으며 침묵하는 나, 걸으며 미소짓는 나, 걸으며 때로는 눈물짓는 나, 모든 나와 함께하는 길은 최고의 길동무가 된다.
바쁜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살던 어느 날, 문득 집 앞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동안 늘 스마트폰을 보며 급하게 지나쳤던 그 길을 말이다. 그때 발견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담벼락 사이로 고개를 내민 꽃들, 길고양이들의 은밀한 휴식처, 오래된 간판들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풍경들. 그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다. 특히 장미의 덤블숲을 확대해보니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특별한 곳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가장 특별한 곳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모든 나와 손잡고 걷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가 함께 걷는다. 때로는 후회하는 나와, 때로는 꿈꾸는 나와, 때로는 두려워하는 나와도 함께 걷는다.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며 걷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길이다.
멈춰 서서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들이 모두 빛나고 있다. 힘들었던 길도, 즐거웠던 길도, 무료했던 길도 모두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소중한 길들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들도 이미 빛을 품고 기다리고 있다. 어떤 길이든 내가 걷는 순간 그 길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 안의 우주와 함께 걸어간다. 특별할 것 없는 이 평범한 하루도, 이 일상적인 길도, 내가 걷는 순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길이 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여기, 내 발걸음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