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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Nov 05. 2020

한국사시험서 '대자연의 기운' 느낀 썰.txt

시험은 '폭망'했지만 깨달음을 얻다



'우르릉 쾅쾅'


갑자기 뱃속에서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먹은 음식 중에 뭔가가 잘못된 것 같았다. 대자연의 기운에 바로 응답할 순 없었다. 시험 문제지를 이제 막 받았기 때문이다. 10월 26일, 이날은 올해 열리는 마지막 한국사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남은 시간은 40분. 중간에 볼일을 보러 가면 남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문제를 풀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최대한 문제를 풀고 나가서 모든 걸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자연은 10분을 주기로 내 아랫배를 강타해왔고, 시험 종료 시간 10분을 남겨뒀을 땐 답안을 제출한 뒤 허겁지겁 시험장을 나섰다.


하필 시험 볼 때..? 오 마이 갓ㅠ (출처:게이티이미지 뱅크)


대자연에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한 후, 평정심을 되찾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다. 한국사의 경우 답안이 바로 공개돼 급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한 문제 차이로 2급이었다. 지문만 좀 더 집중해서 읽었더라면 충분히 풀 수 있었던,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흐느끼던 울음은 점점 커져 나중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커지더니, 결국 꺼이꺼이 큰 소리로 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반응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 시험이 이렇게까지 절실했었나? 꼭 필요한 자격증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도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이런 깊은 상실감을 느끼는 게 내심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시험은 내게 단순히 실용성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지?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각각의 요구는 넘쳐나고, 한쪽에 올인할 수 없어 에너지를 분배하다 보면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게 생긴다. 노력은 한다고 하지만, 어느 쪽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니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코로나19가 지역에 재확산하면서 아이를 시가에 맡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에 어쩔 줄 몰라 난감하던 그날 저녁이었다. 한국사 시험을 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공부시간을 확보한 뒤 시험을 치르자.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쪽의 요구도 없는 출퇴근 시간 등 공백 시간을 활용해 원하는 급수를 따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올라가겠지.


그래서 열심히 했다. 평일에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면 아이를 재운 뒤 동영상 강의를 들었고,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오답노트를 봤다. 오래전부터 잡아 놨던 친구들과의 캠핑 약속이 있던 날에도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암기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다. 처음엔 60점대에 그쳤던 점수도 1주일이 지나자 계단식으로 올랐고, 그럴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암울했던 시기에 개혁을 단행했던 군주를 존경했고, 시대의 혼란을 틈타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오적의 사진을 보며 분개했다.


한 달 여 기간 동안 시험공부를 하면서 내가 잃었던 건 약간의 수면 시간이다. 비록 원하던 급수는 아니지만, 없던 자격증이 생겼으니 잃은 것보다 얻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상실감이 컸던 걸 보면, 나는 아마 나는 원하는 급수를 얻는 일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일과 육아는 마지못해 하는 '노동'의 성격이 강하지만, 공부는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결핍이 두려워 몸을 바쁘게 만드는 건 아닌지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의 저자 박우란은 어떤 상처나 공백에서 도피하기 위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현대인의 군상을 지적했다. 이 경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결국은 상처나 공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의 결핍을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내 얘기이기도 하다. 퇴근 후 돌볼 아이가 없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공허한 그 상태를 오랫동안 느끼지 않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집중하며 잃어가는 나만의 시간, 개인의 삶을 직시하지 않고 싶었는지도.


한국사 공부는 좋은 경험이었다. 역사를 알지 못할 때와는 다른 시야를 가질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이직할 때 도움이 된다. 하지만 1급을 따기 위해 다시  시험을 치를지는 모르겠다.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아기에게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실용적인 자격증 한두 개보다 내 욕구를 들여다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일인 것 같아서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의 공백을 인정하고, 내 결핍을 받아들일 때 아이에게도 그 결핍을 은연중에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박우란은 말했다. 내 욕망을 스스로의 것으로 분리하지 못한 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어떤 곳도 완전하게 만족시키지 못하는 부족한 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삶의 방향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몸 하나만 건사하기도 힘든 내가 회사와 아이, 내 일까지 같이 하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너무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진 않기로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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