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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May 28. 2021

본격 비혼 권장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정상가족' 신화를 달성한 두 개인은 어떻게 서로를 파괴하나


https://m.tv.naver.com/v/5698681


얼마 전에 회사의 기혼 여직원 동료들과 결혼의 장점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결혼의 장점이 몇 안 돼서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이를테면 집에 택배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든지, 배달음식을 시킬 때 덜 무섭다든지, 손이 안 닿는 신체 부위를 대신 긁어준다든지, 신혼부부 대출 이자가 적다든지 하는 내용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우리 그룹 중 유일한 미혼인 동료가 역시 결혼하지 않길 잘했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고 나서는 그 대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야말로 비혼을 권장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혼이 부여하는 의무, 혹은 '정상가족' 신화가 자유롭고 싶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성향 탓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프랭크에게 마음이 갔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도 배우자에게 아침을 만들어 주며 일상을 지탱하려 애썼던 에이프릴의 절망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정상가족'의 구성원에 요구되는 성격이 자신에게 잘 맞으면 좋으련만, 특히 문화예술인이었던 에이프릴은 이 갇힌 일상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 프랭크는 회사에서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직원과 관계라도 맺으며 결혼 관계의 결핍을 메우는데, 에이프릴은 그럴 기회조차 없었으니. (관계 맺는 게 잘했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나도 에이프릴이 느꼈을 숨 막힐 듯한 느낌을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다. 개인의 고유함은 지워지고 아내나 엄마 같은 관계성에만 매몰되는 그 느낌적인 느낌. 독립된 개인이었던 남녀는 결혼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정상가족' 내 부부의 역할과 맞바꾸고, 개인이 지워진 '부부'라는 관계로만 살아간다. 이런 관계에서 단조로운 일상은 기혼자들에게 필연적인 것도 같다. 다행히 나와 배우자는 서로에게 대단한 기대를 하지 않고,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여백의 시간에 자신의 취미에 몰입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빛나는 순간을 보여준 두 주인공이 다시 뭉쳤다. 인터넷 포털 댓글에 '타이타닉 주인공도 결혼을 피해 가지 못했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 다능....


물론 차이는 있다. 나는 좀 원하는 회사에 이직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고, 배우자는 듀얼 모니터로 된 컴퓨터에서 게임을 한다. 언뜻 보면 내가 이상을 추구하고 배우자는 그 반대인 듯 보이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만큼 개인적인 노력으로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노력하는 것뿐이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배우자는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해외에 나가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삶에 나도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두려워 되묻지 않았다. 어쩌면 프랭크가 에이프릴을 볼 때 그런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셋째를 임신한 에이프릴에게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프랭크의 말은 그저 에이프릴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감언이설에 불과하고,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파리에 가야겠다고 선언하는 에이프릴의 모습은 어딘가 위선적이다. 조금만 서로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서로의 관계를 조금만 돌아볼 시간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나도 최근 비슷한 굴곡을 겪었다. 배우자와 사소한 생활의 작은 부분이 맞지 않아, 서로에게 불만을 쌓아둔 채 며칠 씩 말을 하지 않아 두 돌 된 아이가 우리의 눈치를 볼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쌓여 분노가 폭발한 순간에는 안온해야 할 집이 생지옥같이 느껴졌다. 그렇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니 나도 배우자의 작은 실수를 넘기게 되고, 그도 나를 좀 더 배려해주려고 하는 등 조금은 서로에게 너그러워졌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부모가 아닌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그린 점이 좀 와닿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서로에게 전우애가 생길 텐데, 영화의 배경인 1920년대에 부부는 동등한 전사가 아니라 각개전투를 하는 다른 나라의 전사였던 건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옆집에 살던 할머니가 휠러 부부를 헐뜯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대목을 '정상 가족'처럼 보이려고 발버둥 치고 애써도 부부 사이의 균열은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지금도 의무고 뭐고 다 귀찮고 피곤해서 삶의 우선순위 몇 가지만 남겨두고 다 제쳐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 장면을 보니 더욱 외부의 시선보다 나의 행복과 아기의 행복에 집중하는 가족을 만들고 싶어 진다. 그게 결국 나와 배우자, 아이의 관계에서 향기가 나게 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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