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윅, 그 장르의 탄생
이렇게 느린 액션 살육자?는 네가 처음이야~
솔직히 저런 스피드로는 결코 킬러 수명의 멱을 딸 수 없다. 확신한다. 그럼에도 영화 '존윅_파벨라 룸'은 즐겁고 신나는 영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복 입은 키아누 리브스가 영화 '내내'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전시하기 때문이다.
오, 책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군. 이 경우 턱뼈가 저렇게 되는구나.
오, 말을 저렇게 이용하면 가슴뼈를 다 부러뜨려서 즉사시킬 수 있겠군. 장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게 존 윅이 수많은 사람의 뚝배기를 깨고 사지를 아작 내는 장면의 기본값은 권총이다. 백발백중한 그의 솜씨가 현실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장면은 탄창을 가는 신이기도 하다. 물론 이마저도 탄알의 개수와 적의 수를 가늠하는 그의 초월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겅중겅중 뛰면서 느려 터져 보이는 존 윅이, 곡예사처럼 유연하고 재빠른 복수의 무술 고수를 쓰러뜨리는 장면들에 비하면 현실감을 논할 만하다. 보통 이 장면은 둔탁하게 한 대 맞은 것 같은데 심하게 비틀대는 적을 사랑하는 연인의 거리만큼 앞에 두고 진행된다. 기필코 탄창을 교체한 존 윅은 자비 없이 그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근접전이 보여주는 쾌감은 극대화된다.
권총 근접전에서 출발한 존 윅은 무기와 장소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사람을 죽여댄다. 오죽하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존 윅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든지 "한 시리즈에서 존 윅이 죽인 사람 수" 같은 게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닐까. 심지어 팬들이 지루해할까 봐, 그렇지만 너무나 뜬금없지는 않게 할 베리를 등장시켜 개들과 함께 진지 하나를 박살내 버리는 신선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존 윅이 계속해서 사람을 멋지게 죽일 수 있도록 하마터면! 무기전시장에 들르고 마침! 말 사육장으로 간다. 또 하필! 존 윅의 어떤 적은 총 대신 일본도를 들고 설치다 그를 위해 무기를 빼앗기고 멋진 오토바이 신을 만들어준다. 자, 너를 위해 준비한 다음 살상 코스는 이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영화의 전개에 때때로 웃음이 나오긴 한다. 그런데 비웃음이라기보다는 감사함이 더 강하다. 고마워ㅠ. 이런 영화는 처음이야.
존 윅의 초현실적 맷집과 그만 맞닥뜨리면 유난히 싸움을 못하는 적에 대한 마술적 설정은, 일반적인 액션 영화의 문법에선 결코 인정받지 못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미 두 편의 전작을 통해, 간단하지만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정립한 존 윅 시리즈에서는 이게 다 용서가 된다. 특히 킬러들의 세계라는 존윅의 세상은 한때 강호를 동경하며 홍콩영화를 섭렵했던 내 취향을 저격하는 것은 물론, 적당히 정보값이 있는 상당수 영화팬들에게도 친밀한 세계다. 그러니까 이른바 존 윅이라는 장르의 탄생. 두둥. 그런데 아무 표정 없는 키아누 리브스가 명품 정장을 입고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듯 상살술을 자랑하는 영화,라고 장르를 정의하기엔 영화 곳곳에 깨알같이 가득 찬 이 영화의 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이 깨알 매력의 8할은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만세.
+ 영화에서 끝판왕으로 나오는 배우는 내가 약 20년 전에?(근거 없는 산출) 봤던 크라잉프리맨의 주인공이다.스타일리쉬한 액션이 가능했고 혼종적? 페이스가 겁나 멋졌던 배우였는데. 여기서도 나름 매력은 있으나 적당히 찌질한 사이코로 나오니까 살짝 슬펐음. 아, 가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