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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Feb 24. 2023

출산과 육아를 혐오합니다

9살 심설하는 도대체 왜 나에게는 동생이 없냐며 종종 한 명을 더 생산해 내놓을 것을 어미에게 요구한다. 설하야, 엄마의 능력으로는 네가 한계야.


엄마의 능력이라. 먼저 경제적인 부분을 보자면, 나는 월급을 밀려 지급하지 않는 나름 안정적인 직장의 정규직 노동자이고 남(의)편은 은퇴가 빠를지언정 또래 대비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교육업계 종사자다. 남의편의 활약으로 우리 가정 경제는 (아마도) 상위권에 속한다. 그다음 보육 인프라를 보자면, 나는 남의편이 확보한 자원을 바탕으로 설하의 할머니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설하가 학원을 마치고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시간에서 보육 관련 문제를 해소했다.


주거불안과 아이 돌봄이라는 거대 이슈가 해결됐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한 명 더 낳아서 설하의 니즈도 충족하고 위대한 고려인 생산이라는 국가와 민족의 사명에 복무하면 되잖은가!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일단 남의편과 가사와 육아 분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설하의 학교학원의 유기적 연결과 지지가 없는 상황에, 일반적인 퇴근시간을 넘기기 일쑤인 내 업무시간과 식사자리의 외피를 쓴 업무 관련 만남까지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내 보통의 삶이다. 게다가 오후 보육을 책임진 나의 부모는 청소와 요리, 그 모든 집안일을 나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라 주말이면 팔목이 돌아갈 정도로 성인 4명이 사는 집을 치우고 반찬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을 어찌어찌 몸빵으로 때운다 한들, 과거시험의 영광과 입신양명의 망령이 살아 숨 쉬는 공자의 나라 한국에서 설하의 교육 문제는 부지런하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미 설하에게 제공해야 할 세계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어나더 설하를 위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줄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부르르 몸이 떨린다. 오, 안돼. 못해.


아이가 생기기 전에도 여성 직장인으로서 울화가 치미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워킹맘 타이틀을 단 뒤에는 주기적으로 각혈할 일이 생긴다. 위선이 얼마나 사람을 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는데, 최근 나온 암울한 출산율 합계를 두고 준엄하게 경고하는 사설들을 볼 때 나는 회칼을 들고 언론사마다 찾아가 싹 담그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다.


우리 회사만 그런 게 아니라, 출산율 관련 비슷한 논조의 사설을 쓴 사람들은 인구학적으로 조직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중년 남성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조직에 진입하기 시작한 여성 기자들에게 여러 의미에서 남성들과 똑같을 것을 요구하면서, 같은 결과물을 냈을 때는 출산과 임신, 혹은 '여성적인 어떤 것'을 이유로 그들에게 상대적 불이익을 줬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 않은 선배를 뒀다는 당신, 축하합니다. 집에서 그는 가부장이 공적영역에 집중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적영역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육아와 돌봄을 십수 년 넘게 전담한 아내를 뒀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보세요 주필님, 일하면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의 현실, 얼마나 아시는지요?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을 한 줄로 쭉 세워뒀을 때 상대적으로 앞 줄 좋은 조건에 자리한 내가 이 정도면, 다른 여성들은 오죽할까 싶다. 주거와 직장의 불안정, 육아와 가사를 특정 성별의 책임으로 내몬 사회적 분위기, 학력주의에 따른 교육의 어려움, 삶의 만족보다는 근면성실을 강요하는 직장의 분위기까지, 미시와 거시를 넘나들며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위협하는 요소는 널려있다.  

 

오늘은 급기야 정부가 11시간 연속 휴식을 하지 않고도 1주에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 불과 며칠 전에 이 정부가 출산율 합계 낮아졌다고 난리치고 윤석열 각하가 친히 보육현장에 납셨던 것 같은데, 노동 문제는 출산 이슈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건지 그냥 사회 기능별 유기성에 대한 파악이 안 되는 건지 궁금하다. (아마도 성인 자녀를 둔) 사용자의 요구대로 64시간 풀로 일한 (어린 자녀를 둔) 남성 노동자는 퇴근한 뒤에도 다음 번 노동에 최적화된 신체로 임하기 위해 집에서 쳐 잘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40시간만? 일하고 퇴근한 아내는 그런 남편을 측은해하면서도 눈앞에 닥친 집안일과 보육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잃을 것이다. 자, 이제는 싸울 시간. 출산율과 노동시간이 반비례 관계라는 건 이미 여러 나라에서 확증된 바다.

 

세상에 없던 생명체를 만들고, 이 생명체가 성장하며 쏟아내는 말과 행동에 기쁨을 느끼며, 스스로 행복을 일굴 줄 아는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그가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돼 주위 모두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걸 지켜보는 일은 분명 보람찬 일이다. 피 흘리는 투쟁 없이 이 과정을 겪는다면 보람을 넘어 나에게도 엄청난 행복일 것이다. 난 희생하고 싶지 않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

 

이런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사람들, 조직, 정부가 출산율에 대해 얘기할 때 다시 한번 회칼을 쥐게 된다. 이 위선자 색기들. 차라리 그냥 출산과 육아가 너무 싫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는 인간들을 원한다고 해.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를 경우, 혀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어 버리는 신이 있다면 무신론 40년이라는 지난 인생을 포기하고 신실한 신자가 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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