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마흔둘이다. 한참 싱그러웠던 대딩 때와 뭐가 달라졌나 싶지만, 요즘 대학가에 가면 뽀얀 애기들이 걸어 다니는 걸 보게 된다. 아, 나도 저랬었던 거구나. 그러고 보니 조금만 무리해도 충전을 위한 낮잠이 필요하다.
삶은 복잡해졌다. 책임질 것은 많아졌고 요구받는 것도 많아졌다. 더 나아진 것이라곤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는데 예전보다 금전적 장벽이 낮아진 것뿐인 것 같다. 나는 저 싱그러웠던 시기 우유 한 팩을 먹기 위해 수업과 수업 사이 짧은 쉬는 시간, 생협 매장이 있는 건물까지 질주해 100원을 아꼈다.
호모 사피엔스의 평균수명이 30살 정도였으니까 마흔을 넘긴 지금은 그저 잉여의 삶이고, 그러니까 예전에 못 썼던 돈이나 근근이 쓰면서 낙 없이 살면 되는 걸까. 남편을 지원하고 딸내미를 키우며 회사에서 시키는 거나 고분고분하며 지내면 되는 걸까.
그러기에 이 시대는 기대수명이 80이 넘는다. 나는 아직 그의 반밖에 안 살았으니까 지금처럼 계속 삶을 저주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자에서 시사 PD로 전직을 시도 중이다. 부장 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스스로를 탐색한 결과, 나는 관리자보다는 콘텐츠 생산자가 내 성정에 더 맞는 것 같다. 이대로 보도국에서 연차가 쌓이면, 후배들의 기사를 '봐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업무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옆에 제작국 PD들을 보니까 부장을 달든 국장이 되든 계속 자기 프로그램을 생산하더라.
풋살이라는 격한 스포츠에도 도전 중이다. 마침 기자협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성 기자들의 수요에 부응하겠다며 여기자 풋살대회를 개최했다. 테니스 20분 레슨에 개처럼 침을 흘리는 입장에서 불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10살 어린 후배들이 같이 하자고 졸라서 여차저차하게 됐다. 연습경기를 하면 이상하게 승부욕이 끓어올라 돌진을 마구 했더니 공격수 포지션이 돼버렸다.
문제는 능력이다. PD 전직과 관련해 "다 늙어서 뭘 할 수 있다고 옘병인가"하는 평가는 내 입장에선 서러운 일이지만 진실의 일면이 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팔팔한 구성원이 마흔을 넘긴 애 딸린 워킹맘보다 뭐든 생산력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를 반박할 거리는 조직에 대한 (무려) 충성심, 적응력, 나름의 경력 같은 건데 뭐 하나 계량화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조건만 놓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를 상쇄하기 어렵다. 결국 내가 몸빵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풋살 경기 룰에 '승부차기까지 동점일 경우 연장자 있는 쪽이 승'이라는 규정이 있다. 나이 든 사람은 그만큼 전력에 마이너스라는 것을 관대하게 말하는 셈이다. 운동을 배울 때마다 "운동신경이 있어서 조금만 하면 금방 잘하겠어요"를 듣고 사는 나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메인으로 하는 풋살팀에서는 체력에 겨워 헉헉댈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쟤들도 나만큼 힘들까?
최근에는 출입처에서 결성한 스터디모임에서 "왕고인 윤지나 선배를 위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음? 나 왕고야? 다들 나보다 연차와 나이가 낮긴 했지만 스스로 왕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가 뜨끔했다. 그냥 막 다뤄주시면 안 될까요. 스터디 시간에 처절하게 깝칠 예정이다.
어른을 존경하라는 얘기도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어른 혹은 왕고가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경험과 연륜이라 불리는 어떤 자본 때문인데, 현대 사회에서 이런 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경험과 연륜은 실제 성과로 연결돼야 그때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존중을 받는(정확히는 존중을 '하라는') 문화가 유구하다 보니, 요즘 어른은 그 자체로 귀찮은 존재가 됐다. 그나마 예전에는 머릿속에만 머물던 게, 탈동방예의지국인 현시점에서는 퇴물취급이 공공연하다. 물론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면서 젊은이에게 할 일을 미루는 어른들도 이런 세태에 한 몫했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곧 '저평가'다. 늙었다며 받는 대우는 늙었으니 무시당하는 것의 다른 말일 가능성이 99%다. 아, 그렇게 나도 이런 판에서 이제 늙은 년이로구나, 자각을 조금씩 하고 있다. 동시에 태도와 성과는 늙음과 상관 없다는 것을 본의 아니게 증명해야 하는 처지다. 본의 아니게, 라고 썼지만 사실 내가 판 무덤이고 사서 하는 고생인 게 많다.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보라, 늙은 년의 광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