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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un 15. 2023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화장실은

다양성을 생각하다: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일본말에 'あまやどり(아마야도리)'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에서 오래 유학한 지인도 선뜻 뜻을 설명하지 못하고 포털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는 걸 보니,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라는 뜻이다.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다. 왠지 시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가 도쿄 시부야의 한 소공원에 같은 이름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안도 타다오는 이 건축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바람과 빛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빛과 바람, 그의 건축 언어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소재다. 여기에 물을 더하는 경우도 많다. 이 건축물에서도 물이 핵심이다. 왜냐면, 화장실이니까.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공원 화장실. 둥근 처마를 쑥 내민 것이 정말 '아마야도리'가 가능한, 아니, 일부러라도 하고 싶은 공간다. 공중화장실을 비를 피하는 장소로 해석하는 사람, 안도 타다오는 그 나이에도 어쩜 이렇게 낭만적인지.


안도 타다오의 공중화장실은 비영리 단체인 '일본재단'의 후원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이전부터 진행한 '더 도쿄 토일렛(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며 유독 일본 특유의 손님 응대 문화,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손님을 극진히 모신다는 뜻)'를 강조했는데, 일본재단은 그 손님이 쓸 공중화장실을 개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성별, 나이, 장애 유무에 따라 일부 사용자의 접근을 막는 화장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도 타다오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비주얼 디렉터, 산업·패션 디자이너를 초청해 모두 17개 공중화장실을 디자인했다. 건축가만 봐도 이토 토요, 반 시게루, 쿠마 켄고, 후지모토 소우 등이 참여했다.


참여 디자이너들은 저마다의 명성만큼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반 시게루는 '투명 화장실'을 만들었다. 화장실에 갔을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더러움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다. 투명 화장실은 밖에서 안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다. 다만, 사람이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특수소재로 만든 유리벽이 불투명하게 변한다. 나올 때 문을 열면 다시 안이 보이게 되는데, 이용자는 이 점을 의식해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장착할 것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날 법한 범죄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다른 디자인팀(Kazoo Sato/Disruption Lab Team)은 '음성인식 화장실'을 고안했는데, 코로나19 유행기의 비대면·비접촉 수칙을 반영했다. 이 팀이 조사해 보니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때 변기 레버를 발로 밟는 사람이 60%, 화장지를 손에 감고 문을 여는 사람이 50%, 엉덩이로 밀어서 문을 닫는 사람이 40%, 팔꿈치로 문을 닫는 사람이 30%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공중화장실에서는 음성명령으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에도 불구하고, 더 도쿄 토일렛에서는 세련되고 독특한 디자인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무엇보다 성별, 나이, 신체에 관계없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시설물을 만들 때 보통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데, 예를 들면 휠체어가 잘 다닐 수 있도록 폭을 넓히거나 턱을 없다. 화장실 문을 여는 버튼을 손이 아니라 발로 누를 수 있게 아래쪽에 설치하기도 한다. 아이를 팔에 안은 부모가 손으로 문을 열기 힘든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식의 작은 배려가 시설물 이용자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


일본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가 디자인한 공중화장실. ⓒhttps://tokyotoilet.jp/en/nishisando/


더 도쿄 토일렛은 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범주를 노인, 영유아, 장애인을 넘어 성소수자까지 확대했다. 각 공중화장실의 한 칸만큼은 성별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요구했다. 특히, 인공기관을 달고 배변을 처리하는 사람을 위한 장루 위생시설을 기본적으로 갖추게 했다. 꽤 높은 수준의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얼마나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화장실을 만들지 고민한 흔적이 짙다.


더 도쿄 토일렛은 '공중'화장실의 원래 뜻 그대로 정말 '모두'가 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우연히 들어간 화장실에서 사회의 다양성에 관해 생각 계기를 갖는다는 건 그 사회에 큰 자산이 될 게 틀림없다.


*참고자료

최은화, 「모두를 위한 공중화장실: 더 도쿄 토일릿」, 『SPACE』 636호, 2020년 11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홈페이지 https://tokyotoilet.jp/en/


*이 글은 SBS라디오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코너 '건축학개론' 2023년 6월 2일 방송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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