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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17. 2023

동네 아저씨의 비범함

공무원을 아무리 데려다 놔봐라, 그게 되는지

서울 남산에 올라탄 산동네 중 다산동 성곽마을이란 곳이 있다. 이 동네 사는 어떤 50대 아저씨의 일상을 취재해서 기사도 쓰고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에도 담았는데, 그는 '동네 아저씨'의 비범함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이 아저씨는 다산동에 '푸세식' 화장실이 즐비할 때부터 그곳에 살며 자가도 마련했고, 강남 쪽 업체들과도 거래하는 안정적인 자영업을 경영 중이다. 이런 분들의 '종특'이랄까? 그런 게 하나 있는데, 남의 일에 참견하길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봉사회' 같은 단체 활동만 서너 군데에, 구의원 선거에도 3번 나갔다. 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매번 10% 안팎의 표를 얻었다.


다산동은 경사가 정말 가파르기로 악명 높다. 그런 곳에 앉은 동네가 대개 그렇듯이 골목에는 정말 질서가 하나도 없다. 어디로 가면 막혀서 못 나오고, 또 어디로 가면 어마어마한 계단길을 만난다. 그런 동네의 복잡한 구조를 이 아저씨는 정말 다 꿰뚫고 있는데, 그건 그가 발바리처럼 동네를 하루에 한두 번씩은 쏘다니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는 동주민센터나 구청 입장에서 보면 참 골치 아픈 민원꾼이다. 동네를 사발팔방 다니며 꺼진 가로등, 빈틈 보이는 돌담, 몰래 버린 쓰레기더미를 낱낱이 체크해 신고한다. 참 할 일도 없다 싶지만 그래도 다산동은 이 아저씨 덕분에 오늘도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깨끗할 수 있다. 이 아저씨는 관의 입장에서 보면 민원꾼, 민의 입장에서 보면 파수꾼이다.


동네를 발발 돌아다니는 와중에 이 아저씨는 온갖 정보를 상당하게 입수한다. 한겨울 냉골방에서 골골 대는 노인 부부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독거노인의 곤란한 처지 같은 것들이다. 물론 동주민센터에도 알리지만 행정이란 게 워낙 하세월이라서, 이 아저씨는 그냥 '동네 형님'들을 동원해 해결한다. 4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살다 보니 철물, 전기, 인테리어 만지는 사람들이 다 형, 누님, 동생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어떤 60대가 굶어 죽기 직전에 겨우 구조됐다는 뉴스를 보며 이 아저씨가 생각났다. 잊을만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부분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겠지만, 공적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일까지 다 체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을 무한정 늘릴 것도 아니고. 통·반장들이 있지만, 보통 예비군 통지서 돌리는 일만으로도 버거워한다


결국 이른바 사각지대라는 건 다산동 아저씨 같은 분들을 엮는 체계로 챙기는 수밖에 없다. 다산동은 '우리동네 관리사무소'를 만들어 이 아저씨를 채용한 적 있는데, 구청장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과연 공무원 몇 명 더 들이면 이 아저씨의 역량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이런 아저씨가 지닌 욕망이 구의원 같은 명예든 공명심이든 뭐든 그걸 잘 이용해서 공적 체계로 끌어내는 게 공적부문에 필요하고 또 해야 할 일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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