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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9. 2023

빙글빙글 오목공원

사람을 구경하는 전망대 혹은 은신처

매주 금요일 아침 라디오 방송하러 서울 목동 SBS에 간다. 11층 스튜디오는 그 좋다는 '공원뷰'다. 미리 가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언젠가부터 '대체 공원에 무슨 짓을 하는 거지?'란 의문이 들었다. 리모델링 중인 공원에는 녹색이 아닌 회색의 콘크리트 구조를 네모반듯하게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지난 주말 그 공원에 다녀왔다. '무슨 짓'인지 궁금했던 건 사찰에서 봄직한 구조인 '회랑'이었다. 이 공원에서 사람들은 회랑을 걷고, 회랑 위로 올라가 또 걸을 수 있다. 회랑은 나무 다섯 그루가 듬성듬성 심긴 잔디밭을 둘러싼다. 그날 잔디밭에서는 어떤 밴드가 버스킹 공연 중이었다.

새 공원의 설계자는 많은 건축가에게 '러브콜'을 받는 조경가(박승진)라고 한다.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탄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서울 용산역 맞은편에 지은 순백의 건축물(아모레퍼시픽 사옥)이 있다. 그 조경가가 이 건물의 조경을 맡았다. 그 조경가는 이 회랑을 '품위 있게 쉴 수 있는 도시의 라운지'라고 했다(회랑 자체는 김희정 건축가가 설계했다).  글쎄, '쉼'만을 강조하는 건 이 회랑을 제대로 설명하기에 좀 부족하다. 회랑에서 비나 눈을 피할 수 있긴 하지만. 양천구청은 '공중산책로'라고도 하던데, 솔직히 2층 갖고 '공중'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고.


난 이 회랑이 같은 공원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은근하게 관찰하기에 좋은, 그런 은신처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게 입체적인 회랑이 주는 재미의 본질 아닐까. 버스킹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찍으며 든 생각이다. 버스킹이 없는 날이 더 많을 텐데, 전망대처럼 높지도 않은 2층 회랑에 굳이 올라가서 무엇을 하란 말일까? 동네 공원에 갈 정도로 할 일 없을 때 시간 죽이기에 제일 좋은 건 역시 사람 구경이다.

목동의 외지인으로서 회랑을 빙글빙글 돌다 보면 어떤 기시감이 든다. 목동의 도로는 일방통행이다. 이 도로는 목마공원, 파리공원, 오목공원, 양천공원 등 공원 사이사이에 학교, 우체국, 경찰서, 구청, 백화점, 방송국 등이 군데군데 박힌 거대 블록을 빙글빙글 돈다. 오목공원 안에서도 사람들은 회랑을 빙글빙글 돈다. 날씨가 좋은 날엔 회랑 안쪽 잔디밭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을 것이다. 목동과 그 목동의 중심을 차지하는 공원이 위상학적으로 비슷한 건 참 흥미롭다.


*참고자료

배정한, 「[배정한의 토포필리아] 오래 머무르는 공원, 도시의 라운지」, 『한겨레신문』, 2023년 9월 24일

온수진, 「[살며 사랑하며] 오목공원과 회랑」, 『국민일보』, 2023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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