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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Oct 21. 2023

공간, 기억, 전쟁

"집들은 마치 사람 대신 벌을 받는 것 같다."

하마스가 이달 초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을 때 작전명은 '알아크사 홍수'였다. 알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의 '성전 산(Temple Mount)'에 있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했는데,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2000여 년 만의 수복'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영토로 삼았던 곳이자 그 아들 솔로몬이 금빛으로 번쩍번쩍했다는 장대한 성전을 세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슬람 입장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메카와 같은 성지다.

알아크사 모스크와 성전 산 전경 ⓒsnowscat(Unsplash)

이스라엘은 '수복' 직후 알아크사 모스크 폭파를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알아크사 모스크에 불을 지르거나 테러를 시도했고, 두더지처럼 지하를 파서 모스크를 무너뜨리려고도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기로 한 오슬로 협정 체결 1년 뒤인 1994년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슬람 측이 통제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이 많았고, 특히 지난해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한층 우경화한 세력을 바탕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다음엔 정치인들까지 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하마스가 이번 작전의 이름에 알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붙인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쟁은 종종 공간의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다.


어떤 집단이 어떤 공간에 그들의 기억을 투영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실제로 공간에 영혼이나 정령이 깃든 것은 아니니, 그 공간을 뺏기고 빼앗는다고 해서 민족적 정체성이나 종교적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군사적 목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탈레반은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직후인 2001년 다이너마이트로 바미안 석불을 박살을 냈다. 바미안 석불은 자연 암벽을 깎아 만든 50미터 높이 석불로, 무려 1500년 역사를 지닌 유적이었다.

바미안 석불 ⓒHekmat Halimi(Unsplash)

모든 종교는 우상을 경계한다. 탈레반은 바미안 석불을 우상이라고 본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탈레반이 처음부터 이 불상을 우상 파괴 대상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점, 끈질기게 저항 중인 그 지역의 소수민족 탄압에 골몰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탈레반은 이 소수민족 포로들이 직접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게 했다. 석불은 이 소수민족이 신성시하는 대상이었다. 이들이 스스로 석불을 파괴하는 모양새를 연출해 패배를 인정하고 항전 의지를 꺾고자 했던 전략이 엿보인다. 나아가 이런 식의 상징 파괴는 결국 집단의 기억을 정복자의 입맛대로 조작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9.11 테러'는 공간을 타격하는 복합적 목적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비행기 두 대가 15분 간격으로 충돌하며 무너뜨린 110층 세계무역센터(1978)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고, 모건 스탠리 같은 국제적 금융기관이 천 개 넘게 입주해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를 "우상 숭배의 우두머리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 경향은 모스크보다 높은 건축물을 싫어한다. 항공기 납치범 중 한 명은 카이로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아랍지역 구도심에 서구식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데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다. 세계무역센터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눈에 '우상'으로 비칠 수 있었고, 이 우상을 다수 거느린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우두머리'였다. 빈 라덴 역시 토목기사 출신으로, 이러한 공간 구조 문제에 관심이 컸을 것이다.


이들의 지식과 전문성 때문일까. 테러범들은 그들의 시각에서는 정치적·종교적으로 가장 적절한 상징을 군사적인 측면(미국 도심 한복판에서 마천루의 촘촘한 구조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도 성공적으로 파괴할 수 있었다.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 조성된 추모 공간 '그라운드 제로' ⓒMagnus Andersson(Unsplash)

그래도 이러한 공간은 무너지고도 '그라운드 제로'(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 조성한 추모 공간) 같은 이름으로나마 기억된다.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대인 정착촌을 짓겠다며 이름 없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가옥을 수없이 부쉈다. 이 풍경을 두고 영국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은 "집들은 마치 사람 대신 벌을 받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런 마을은 원래 그 장소에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최근 하마스가 민가 사이에 기지를 마련해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는다고 주장하면서 가자지구 주민에 철수를 압박하고 있다. 곧 팔레스타인인의 집에 대한 '대량 학살'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현실이 된다면, 또 하나의 기억이 말소될 것이다.


*참고자료

로버트 베번, 「집단 기억의 파괴」, 알마, 2012

리처드 윌리엄스,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현암사, 2021

선정민, 「하마스 작전명은 '알아크사 홍수'」, 『조선일보』, 2023년 10월 9일


*이 글은 SBS라디오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코너 '건축학개론' 2023년 10월 20일 방송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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