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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an 06. 2020

01. 첫 여행은 열아홉

첫 번째 행복 : 사실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첫 여행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면 주저 없이 인도라고 답한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믿을 구석이라곤 탱탱한 육체와 가이드북뿐이었던 불완전한 여행에 대해 사람들은 무럭 관심을 보낸다. 누구는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 또 누구는 별것 아닌 멘트를 노트에 빼곡히 받아 적는다. 50만 원으로 한 달을 여행 후 오히려 돈을 남겨왔다는 말에는 거의 박수라도 칠 기세다. 이런 식의 반응은 좀 간지럽지만 그래도 나는 말을 이어간다.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받는 건 내가 하는 많은 일 중 하나고, 또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강연에서는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 쪽이 잘 먹힌다. 흔하지 않은 나라일수록 좋고 최대한 돈을 적게 썼거나 왕창 썼거나 혹은 죽도록 고생했거나 뜻하지 않게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들려주면 거의 성공한다.


저 워킹홀리데이가서 천만 원 모았어요.

잘생긴 남자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러시아 남자죠.

스위스 일주일 여행하는데 500만 원 썼어요.

인도에선 커플 되기 참 쉬워요. 그만큼 헤어지기도 쉬운 게 문제지만.


이런 류의 에피소드는 듣는 사람뿐 아니라 발화하는 나에게도 대부분 특별한 순간일 때가 많다. 사랑에 빠지고, 울고, 돈을 쓰고, 죽음과 아주 가까워졌던 일들. 때문에 여행 이야기를 왕창 쏟아낸 날에는 잠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정신이 세계 어디를 떠돈다. 캐나다 횡단열차를 타거나, 뉴델리 빈민가를 걷거나, 라오스에서 만난 잘생긴 영국인과 이성적 텐션을 힘껏 높이며 노닥거리는 방식으로. 나라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냄새나 소리나 어떤 정서를 복기하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역시 여행이란 건 가성비가 아주 좋은 것만 같다.



최근에는 대구에 있는 중학교로 강연을 다녀왔다. 수업이 진행되던 중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 맨 처음에 간 여행은 언제였어요?"

어렵지 않게 인도라고 대답했는데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태어나서 간 진짜 첫 여행이요."


말문이 막혔다. 진짜 첫 여행이라. 진짜란 무슨 뜻이고 처음이란 대체 언제를 말하는 걸까. 갑자기 기준이 모호해진 나는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떠났던 경상도 여행인 것 같다고 대충 대답했는데 왠지 크게 후회하고 말았다. 질문한 학생이 대놓고 시무룩해했기 때문이다. 내 여행의 탄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너무 티 내버렸다. 그날 나는 아무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강연을 마쳤지만 왠지 돈 받을 자격은 없음을 느끼며 찜찜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진짜로 돈을 안 받지는 않았지만.


그 강연 이후, 내 여행의 태동이 언제였는가를 고민했다. 여름마다 떠났던 가족여행. 아빠 친구네 가족과 우르르 떠났던 제주도 여행. 처음 술을 마셨던 수학여행. 그 후 이어진 첫 해외여행. 처음이 되는 기준이란 시기, 깊이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만일 첫 여행의 정의에 '내가 가고 싶어서 간'이라는 의미가 붙는다면 아마 열아홉에 떠났던 부산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수능이 끝난 겨울. 

열아홉의 나는 조금 무기력한 채로 살았다. 

대입이 끝났지만 어쩐지 막 신나지는 않은, 다 끝났지만 아직 안 끝난 것 같은, 시간은 많지만 어떻게 써야 할 줄을 몰라 하루의 반을 잠으로 때우는, 학교는 가지만 공부할 필요는 없는 교복 입은 나이롱 학생. 어른들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데. 이런 시간은 죽을 때까지 주어지지 않는다는데. 그러니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데. 하지만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보다 아무거나 막 하기엔 우리는 덜 성인이고 돈도 없는데 대체 뭘 어쩌란 말인 건지. 그래서 나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아주 많이 하거나 거의 안 하는 방식으로 대충대충 휙휙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유일하게 즐거웠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 했던 건 바로 절친 L과 통화를 하는 일이었다. 낮잠을 많이 자 새벽이 길어진 두 10대는 식구들이 잠든 틈을 타 집 전화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매일매일 통화했다. 하루는 내가 걸고 다음 날은 L이 걸고, 집 전화비가 걱정되는 날에는 각자의 핸드폰으로 비기알을 아껴가며 짧게나마 일상을 나눴다. 대화 주제는 대부분 대입 결과나 재수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런 얘길 하기 너무 무거운 날에는 그저 연예인 얘기나 각자의 남동생을 흉보는 방식으로 새벽을 보냈다. 



어느 날 새벽, 평소와 다름없던 통화에서 L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아, 여행 가고 싶다. 

L이 희망했던 대학교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자, 수학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최종적으로 접은 날이었다.


나는 불쑥 대답했다,

- 가면 되지. 

L이 말했다.

- 어디로? 

- 너 돈 얼마나 있는데.

- 한, 7만 원쯤?

- 우리 부산 갈래? 

- 언제?

- 지금


지금이라는 말은 내가 뱉어놓고도 꽤 능동적으로 들렸다. 갑자기 머리에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수능 이후 처음으로 할 일이 생긴 우리는 전화를 끊고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을 사람들처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한 시간. 핸드폰과 지갑과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와 목도리, 그리고 혹시 몰라 여기저기 짱박아두었던 500원짜리 동전들을 비상금으로 챙겼다. 합법적으로 어디로든 떠나버릴 수 있는 나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부산행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엄마 아빠. 나 부산 좀 다녀올게.


폴더폰을 반으로 접으며 나는 진짜로 곧 어른이 된다는 걸 와락 실감했다. 새벽을 내 맘대로 쓴다는 것. 보호자 없이 살던 지역을 벗어난다는 것. 그건 내 인생 처음으로 만져진 어른의 질감이었다. 





우리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유일하게 아는 곳인 해운대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L과 나는 최대한 고등학생 티를 내지 않으려 몸과 마음과 표정으로 애썼다. 어설픈 티를 내는 건 곧 촌스러운 것이라 믿던 때였다. 우리는 부산에 처음 온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티를 크게 내며 부산역에서 해운대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했다. 바다는 대구에는 없지만 부산에는 아주 크고 넓게 있는 설레는 것이었다.


해운대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것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볼거리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그나마 불이 켜진 곳은 편의점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운대는 너무 추웠다. 부산은 대구보다 아래에 있으니 당연히 좀 덜 춥거나 어쩌면 따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코였다. 혹시 몰라 챙겨온 목도리는 일찌감치 얼굴 아래 둘렀지만 그걸로는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교복보다 아주 약간 따뜻할 뿐인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앞섶이 살짝만 벌어져도 찬 바람이 가슴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멋부린다고 내복을 챙겨 입지 않은 탓이다. 


바닷바람은 가만히 서있을 수조차 없을 만큼 차가웠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어디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바다가 마주 보이는 위치에 편의점이 있었다. L과 나는 편의점에서 바깥을 보고 앉아 컵라면이 불기를 기다리며 웅얼거렸다.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졸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 해운대 별거 없다야.

- 그러게. 사람도 거의 없고. 뭐냐 이거.


해운대는 아침보다 밤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린 나이였다. 

그래도 L와 함께 먹은 컵라면은 맛있었다. 라면은 우리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통과해오는 동안 떡볶이 다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했다. 


동이 완전히 튼 후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가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부담스러웠지만 가깝고 따뜻하고 무엇보다도 부산까지 와서 뭔가 했다고 말하기에 꽤 적절한 것 같아 많이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어두컴컴한 물속을 돌아다니며 L과 나는 해마나 산호, 어디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L도 나도 아쿠아리움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상어가 허연 배를 보이며 머리 위를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했다. 상어는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터널을 돌아다니는 동안 L이 입고 있던 빨간 코트는 이따금씩 검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네 코트 색이 검은색으로 보인다고 말해주려고 L을 돌려세웠다가 그만 꺅 소리를 질렀다. L의 입술이 포도주 빛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파랗고 어두운 터널을 걸으며 L과 나는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네 입술 까맣다고. 너도 그렇다고. 근데 너 왜 웃냐고. 그러는 너는 왜 그러냐고. 우리는 물고기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걷거나 앉거나 다시 걷는 방식으로 오래오래 입장료를 뽕 뽑았다. 아무래도 죽기 전까지 아쿠아리움은 안 와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부산이 조금 익숙해진 우리는 대담하게 시내를 걸어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부산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지만 해가 있으니 견딜만했다. 우리는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상점이나 횟집, 함부로 사 갔다 간 엄마한테 크게 혼날 것 같은 옷들이 즐비한 보세 옷가게들을 구석구석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APEC 누리마루도 갔다. L이 지나가던 부산 사람을 붙잡고 갈만한 곳을 물어 겨우 얻어낸 장소였다. 발가락이 꽁꽁 얼 것만 같은 추위를 참으며 힘들게 찾아간 누리마루는 생각보다 별게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앞서가던 L의 뒤통수와 살짝 더러워진 운동화 뒤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그 모습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L을 대변하는 형상으로 내 꿈속에 등장한다.


밥도 사먹고 물오뎅도 사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다. 경비가 몇 천원 남긴 했지만 혹시 몰라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 남겨두기로 했다. 집을 나설 때 동전까지 쓸어모아온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다. 

돈을 쓰지 않고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아무 계단에나 주저앉았다. 완전한 낮이 되니 확실히 덜 추웠다. 우리는 각자 코트 주머니 안으로 두 손을 찔러 넣고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왠지 그 사람들도 앉아 있는 우리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L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그러고 있다 끝내 각자가 입학할 대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L은 가고 싶은 학교를 못 가게 돼서. 나는 6년 만에 L과 다른 학교를 다니게 돼서. L과 함께이지 않은 학교생활은 왠지 상상만으로도 겁나는 것이었다. 


- 나 진짜 수학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L은 많이 울컥한 것 같았다. 나도 좀 그랬다. 세상에 L 만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과생이었던 L은 파워 문과생이었던 내게 자주 수학을 가르쳐줬다. 나는 여러 과목 중 수학을 특히 못했는데 그래도 L이 설명해주는 건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L은 태생적으로 수리력이 부족한 아이들의 혼돈 포인트를 귀신같이 짚어냈다. L의 설명 덕분에 막혔던 부분을 무사히 통과해낸 아이들은 나 말고도 많았다. L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꼭 뒤돌아서 이렇게 말했다. 

- 저런 애들이 선생이 돼야 하는데.

아이들의 칭찬은 L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되었고 그런 L을 바라보는 것은 학창시절 나의 또 다른 기쁨이었다.


-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치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지만 나는 끄덕였다. 사람들은 계속 모래사장을 밟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었다.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었고 열심히 뛰는 사람도 있었다. 동그란 해가 수평선 저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정면으로 바라보자 해의 테두리가 까맣다가 파랗다가 조금 뒤엔 새빨갛게 변했다. 계속 바라볼수록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나는 태양의 잔상이 선명히 남은 눈으로 겨울 파도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해운대 바다는 예쁜 색이었지만 어쩐지 다정해 보이지는 않았다. L이 아주 조금 우는 것 같았다.



일탈의 설렘이 꺼지자 우리는 다시 피곤해졌다. 볼 만큼 봤고 먹을 만큼 먹었다 싶을 때쯤 L과 나는 표를 끊으러 역으로 갔다. 빨리 따뜻한 의자에 늘어지고 싶은데 어쩐지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표가 너무 늦게 있었다. 다시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2,000원쯤 남은 경비로 뭘 할까 고민하다 카페를 가기로 했다. 부산역 앞에는 원래 빵집이지만 빵을 파는 김에 커피도 같이 파는 2층짜리 카페가 하나 있었다.

L과 나는 유리 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 카운터 앞에 섰다. 사장님이 어서 오시라고, 밖에 많이 춥지 않냐고 친절하게 물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L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 카페를 와본 것이다.


야. 너무 비싼데?


옆에서 L이 속삭였다. 나도 동의했다. 빵값은 그렇다 치고 일단 커피가 너무 비쌌다. 400원짜리 레쓰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던 우리는 1,000원이 훌쩍 넘는 메뉴들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각 한 잔씩 시키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금액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드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돈 때문에 도로 나가기는 너무 창피하고, 그렇다고 둘이 와서 한 잔만 시키는 것도 못지않게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우리는 짱구를 굴렸다. 제일 저렴한 커피가 1,200원, 그리고 초코빵 하나가 800원이니 이 정도면 쪽팔리지도 않고 적당히 당당하지 않을까. 타협점을 찾은 나는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 에스프레소 하나랑 초코빵 하나 주세요. 


남자 사장님은 주문을 넣다 말고 우리를 빤히 봤다. 처음엔 나를 봤다가 다음엔 L을 보고 나중엔 우리 둘을 동시에 위아래로 훑었다. 왜 보는 거지. 너무 싼 것만 시켜서 싫어하는 걸까. 아무래도 편의점을 가는 게 옳았을까. 온갖 생각이 드는 와중에 사장님이 슬며시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학생들. 에스프레소 뭔지 알아요?


역시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당황하면 우물쭈물하는 버릇이 있는 L대신 비교적 뻔뻔한 내가 대답했다.

- 아니요. 사실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돈이 없다고 말하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목덜미가 다 화끈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장님은 에스프레소가 어떤 커피인지 설명했다. 에스프레소는 양이 아주 적은 커피인데 너무 쓰거나 시기 때문에 어른들 중에서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되게 그럴듯하게 설명해주긴 했지만 내 귀엔 값은 싸지만 지나치게 어른의 맛이라 우리들이 먹기엔 좀 그렇다는 뜻으로 들렸다. 잔뜩 풀이 죽었다. 레쓰비에서 에스프레소로 뛰어넘기에 우리는 돈도 없고 나이도 너무 어렸다. 그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우리에게 이천 원만 받고 아메리카노 한 잔과 초코빵 하나를 내어 주셨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은 것인데 설탕을 타면 우리도 충분히 마실만할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부족한 몇 백원은 살면서 부산에 자주 놀러 와주는 조건으로 퉁쳐주시기로 했다. 모르는 어른과 약속을 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부산은 내게 여러 가지의 처음이 시작된 곳이다.  



이 마주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L과 나는 생애 첫 아메리카노를 사이좋게 나눠마셨다. 까만 커피는 아무리 설탕을 타도 맛이 나아지질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모금씩 끝까지 마셨다.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왠지 이런 쓴 커피를 좋아하게 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역시 내 입맛엔 캔커피가 최고야. L과 나는 2층 구석에서 사장님 몰래 히히 웃었다. 부산의 화려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첫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첫 자유. 일탈. 새벽. 기차. 해운대. 커피. 사소하지만 딱 열아홉이기에 할 수 있었던 L 과의 부산 여행. 14년이 지난 지금 L은 수학 선생님 대신 공무원이 되었고 나는 커피 없이는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여행작가 되었지만, 아직도 현생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우리는 열아홉 날의 그 부산 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내 돈 주고 떠난, 내 의지로 다녀온, 가장 깊은 의미를 남긴 나의 첫 여행. 이 긴 글이 내 강연에서 성의 없는 대답을 들어야 했던 남학생에 대한 사과가 되었길, 2005년 겨울, 대구 출신 여고생들에게 선뜻 커피값을 깎아주었던 이름 모를 사장님에 대한 감사 인사가 되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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