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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Jan 13. 2020

02. 지방러에게 서울이란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왔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무렵. 어린 소녀가 가요계에 등장했다. 


앳된 소녀의 데뷔에 대중은 술렁였고, 그녀는 기대와 함께 어마어마한 질투를 받으며 차곡차곡 성장했다. 소녀 보아가 가수 보아로 커나갈수록 아이돌을 꿈꾸는 또래 아이들은 많아졌다. 저렇게 어려도 가수를 할 수 있다는, 그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매력적이었고, 대형 기획사 앞은 주말마다 오디션을 보러 온 보아 2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중엔 나도 있었다. 웃기지만 어릴 적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수라기보다는 그저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는 열다섯의 나는 꽤 반짝였다.


어느 날 운 좋게 대형 기획사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대체 어떻게 합격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아무튼 결과를 듣고 종일 설렜다. 열다섯 인생에서 얻은 결과물 중 가장 값진 일이었다. 

고작 1차일 뿐이지만 마음은 이미 무대 위를 날았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대중 앞에서 사진을 찍히는 일을 상상하며 종일 실실 웃었다. 입이 귀에 걸린다는 말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체험했던 날이었다. 해낸다는 건 이토록 기쁜 일이었다. 


2차 오디션을 보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나는 대구에 살았고 왕복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다. 애초에 서울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는 열다섯이었다. 보호자가 필요해진 나는 엄마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서류 전형에 통과한 이미지 사진을 보고 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축하한다고 해줬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너는 진짜 희한하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말,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엄마와 함께였다. 서울은 엄마도 몇 번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열다섯 딸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기차에서 나는 뭔가를 먹거나 자거나 가사를 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차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긴 여행을 시작한 것 같았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대구를 보며 신이 나는 동시에 조금 비장해졌다. 서울은 자고로 내가 아는 대부분의 대단한 것들이 시작된 곳이다. 15년 차 지방러에게 서울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창밖으로는 도시스러운 시골과 시골스러운 도시의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스피커에서는 지금은 구미라고, 다음은 대전이라고, 그다음은 또 어디라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차가 북쪽으로 향할수록 타는 사람들의 말투가 달라졌다. 높낮이가 있는 듯 없는 나직한 말투는 이상할 만큼 신경을 당겼다. 내 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낯선 말투를 들으며 나는 가사지가 적힌 종이를 꼭 움켜쥐었다. 서울말은 왠지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서울역에 내려 기획사 사옥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희미한 이유는 바로 엄마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울역에 내려서부터 엄마가 아주 심한 대구 사투리를 마구마구 구사했기 때문이다.  


"거기는 어떻게 가예?"


엄마는 평생을 대구에서 살았어도 사투리가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다. 아니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세련된 모습으로 일하는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 큰 자랑거리 중 하나였고, 내 머릿속 온갖 도시스러운 이미지는 바로 엄마로부터 출발했다. 어디서나 인정받는 엄마를 보며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멋있는 거라고, 나도 최대한 멋있고 세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나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엄마를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엄마는 미안하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엄마는 여전히 예쁘고 당당했지만 서울에서는 제발 좀 그만 당당해졌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사투리로 말을 시켰다. 


"배는 안 고프겠나?"

"머리는 와 그래가 왔노"


대구 사투리는 인지할 것도 없이 귀가 먼저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쳐다봤다. 엄마가 한 마디 할 때 힐끗, 내가 대답할 때 또 힐끗. 사투리가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된 게 아니기 때문에 말 좀 그만하라고 부탁할 수 없는 게 제일 답답했다.

주목받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주목받기 싫은 희한한 나이였다. 열다섯 딸의 오디션이 신경 쓰이는 사투리 쓰는 40대 여자와, 그런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열다섯 딸은 서로 다른 것을 걱정하며 조금씩 오디션장으로 이동했다. 

사옥 앞에는 사람이 많았다. 내 또래 학생들도 있었고 나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연습했는데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길에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지? 


그들이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나는 이미 진 것 같았다. 서울 사람들은 말투도 옷차림도 하는 행동도 신기했는데 그 신기한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뭐랄까, 좀 무서웠다. 태생적으로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듯한 느낌. 이 사이에서 내가 노래를 하고 춤도 춰야 한다고. 사투리로 자기소개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서울은 정말이지 대단한 동네였다. 


입구에서부터 기가 확 꺾인 나는 공개 오디션을 말아먹었다. 심사위원은 참가자가 조금만 실수해도 가차 없이 다음 번호를 불렀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준비해 간 UN의 파도를 불렀는데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자마자 바로 기회가 날아갔다. 


-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닷가. 나의 눈 속엔 그보다 고운 너였어.

- 네 다음 분,


20초 만에 차례가 지나간 게 믿기지 않아 잠깐 멍하게 서 있었다. 가슴이 화끈했다가 일순간 훅 식었다. 이미 내 다음 차례 후보가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라고? 아닌데. 더 잘 할 수 있는데. 진짠데. 나는 조금 전 엄마를 부끄러워한 벌을 이렇게 받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잘못한 일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겨우 이거 부르려고 서울까지 왔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해볼까. 돌아서는 순간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아주 천천히 무겁게 걸었다. 혹시나 뒤에서 잡아주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펑펑 울고 싶다고 생각하며 복도로 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거나 선채로 울고 싶은 마음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속 시원히 우는 사람들을 보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혼자 오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마음껏 속상해도 못하고 이게 뭐람. 엄마를 만나러 사옥을 나서던 길, 등 뒤에서 아직 발매 전인 SES의 5집 타이틀곡 U가 흘러나왔다. 


분식집에서 엄마와 마주 앉아 우동을 먹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허기가 졌는데 왜인지 아무리 국물을 들이켜도 배가 안 찼다. 머릿속은 온통 아쉬운 지난 20초에 머물렀다. 다른 노래 할걸. 다른 파트 부를걸. 그냥 여자 노래를 했어야 했는데. 대체 왜 그걸 불렀을까. 그런다고 거스를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 방법 밖엔 없었다. 스스로를 탓하는 게 상황을 탓하는 것보다 덜 못난 것이라 배웠던 시절이다.

탓하고 후회하며 첫 서울과 헤어진 뒤, 한동안 서울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크게 뛰었다. 심장이 아래로 쿵, 다시 위로 쿵 할 때마다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길거리, 특이한 차림의 사람들, 서울말, 눈에 띄던 춤꾼들, 실수로 삐끗한 목소리, 뒤이어 들려온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뇌리를 때렸다. 네, 다음 분.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인생에 가수 오디션을 볼 날은 두 번 다시없을 거라고. 


나는 현재 열다섯 보다 두 배는 더 살아낸 어른이 됐다. 서울역에서 벌벌 떨던 열다섯의 서현지는 서른이 넘어 노래 대신 글을 쓰고, 멜로디 대신 강연 대본을 읊는 여행작가가 됐다. 타지마할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여러분. 앙코르와트의 1회랑을 돌아나가면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 중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와 같은.

이제는 서울이라면 반나절 만에 거뜬히 다녀오고 때에 따라 표준 억양도 무난하게 구사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서울은 좀 아련한 구석이 있는 도시다. 많은 건물들이 있지만 내 집은 없는, 수많은 기회가 있지만 내 자리는 없는, 그러면서도 지금의 나를 먹여살리는 대부분의 일거리가 있고 친구가 있고 여러 실패와 기쁨과 추억과 성장의 증거들이 있는. 그런 도시. 

우연히 길에서 들려온 SES 노래를 따라 부르다 갑자기 그날의 오디션과, 20초와, 후회와 서울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의 첫 서울이었더라. 충분히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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