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이야(2)

잘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리뷰몽땅

아침부터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꿈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휠체어에 앉아 커다란 눈을 꿈뻑대는 아버지였다.

어어어 하는 소리에 남편이 나를 깨웠다.


"또 무슨 꿈을 꾼거야? 괜찮아?"


마치 아기를 재우듯 남편은 나를 안아서 등을 토닥토닥 했다


힘겹게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는 커피를 내렸다.

또르륵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상하게 조용한 아침이었다. 햇살만 거실 안으로 쨍하게 들어왔다.


카톡. 알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손이 떨려왔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다른 소식이길 바랬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오려면 지금 오는게 좋겠다."


무덤덤한 언니의 카톡이었다. 나는 아들의 방으로 갔다


"할아버지 요양 병원에 좀 태워줄 수 있어?"


아들은 말없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나는 옷장 문을 열어

며칠전 빨아서 잘 다림질 해 둔 검정색의 바지와 블라우스를 서둘러 입었다.

딱 10분 걸렸다. 그런데도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은 밖으로 밀려났다. 차에서 기다릴게.

그리고는 물끄러미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엄마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달려가서 받치려고 했단다.

어느새 이만큼 컸구나. 그 말만으로도 나는 고마웠다.


신원확인을 하고 병실에 들어서기 전에 비닐로 된 겉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비닐 모자를 쓰고 비옷같은 비닐 옷을 입고 드디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잠깐만요. 운명하셨습니다. 내려 오신다고 해요"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큰 소리로 울어본 적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소리 죽여 울던 나였다.




"돌아가셨어도 아직 영혼은 그대로 계십니다. 하실 말 있으면 지금 하세요."


얼음처럼 굳어버린 아버지의 침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왔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침대를 따라 작은 병실로 들어갔다.

다시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 일으키면서 둘도 없는 사이였던

둘째 언니는 이제는 원수가 되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 이제 아무 걱정 말고 아무 미련 두지 말고

편안하게 돌아서서 가세요. 꽃피고 따뜻한 햇살 내리는

예쁜 마을에 가서 쉬고 계세요. 여기는 아무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해 둘게요. "


아버지와 함께 나는 운구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무척 피곤해 하는 기사 아저씨게 부탁을 해서

나는 아버지의 집이 있는 대구 아파트에 잠시 들렀다.

그렇게 오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집에 작별을 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를 집에 데려다도고"

"가자. 내 집에 가자. 내가 가야 된다."


장례식장에는 다섯째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지 않았다. 병원 직원들과 함께

아버지는 바쁘게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아버지의 차가운 뺨을 한 번 더 만져 보았다.




아버지를 보내고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자식된 도리를 했는지 채점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무 쪽에도 끼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 놓기 위해서는 이쪽 저쪽에서 욕을 먹어야 할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참을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나는 매일 들어야 했다.

어떤 날은 미칠 듯한 분노가 광기로 변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설핏 잠이 들었다.


"네가 하도 네 아버지를 걱정해서 내가 왔다. 가서 보자."


나는 왜 그 분이 아버지의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일까

나는 할머니를 따라 어두운 길을 지나 눈이 부시게 환한 곳에 도착했다

거기에 색동 저고리를 입은 어린 아버지가 뛰어놀고 있었다

아버지의 곁에는 나의 할머니가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고

주변은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아버지를 만지고 싶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림막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재롱을 부리는 어린 아이 같았다. 나는 또 소리죽여 울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을 다닌 지 석 달이 지난 때였다.

침대가 나를 묶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베개에서

떼어낼 수 없었던 나는 평소와는 달리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는 아직 어둠이 가득했다. 딸깍. 불을 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랫만에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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