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게
가을이 깊어갑니다.
참 짧아요. 가을
그리고 할 일 없이 뒹굴대다
저는 동묘시장으로 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스러운 물건들이 가득했어요.
녹이 슬고 거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이
오히려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낡은 라디오 사자 모양의 라이터
그리고 LP판
돌아가신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하셨죠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엄마 손을 잡고 한 바퀴 휘 돌리시기도 했죠
엄마 역시 춤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평소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날에는 금슬 좋은 부부인 양
심수봉의 노래에 맞춰 댄스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당황스러운 우리들이었어요.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명 어제는 죽일 듯이 싸운 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늘 양복을 입고 다니셨어요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괜히 좋았습니다.
키는 작았지만 아버지는 양복이 잘 어울렸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입을 양복을 꼭 손수 다리셨어요
일주일 동안 아버지가 입을 셔츠 다림질을 끝내면
아버지는 언니들을 향해 말씀하셨죠
"니들은 다릴 거 없나 가져온나"
그러면 언니들은 교복을 들고 오곤 했어요.
막내딸인 저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워서
늘 손수건을 한 장 챙기고 다녔습니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내밀었어요.
"나도 이거 다려 줘요"
다리미의 열이 채 식기 전에
아버지는 웃으면서 수줍음 많은 막내딸의
손수건을 다리고 또 다려서
빳빳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언니들이 채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정년퇴임을 맞으셨어요.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불러 옆에 앉히시고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보셨습니다.
나는 재미도 없는 야구를 보면서
아버지 옆에서 자리를 떠도 될까
아니면 왜 불렀는지 물어볼까
망설였죠. 어린 시절 나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
부모님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어째야 하나 아버지가 우는데
누구한테 말할까 아버지가 운다고
그러다 바지 속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아버지 무릎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가 울 수도 있구나.
그리고 나는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갑니다.
아직은 멀었지만 얼마 남지 않았어요.
참 먹고살기 힘든 요즘입니다.
하는 일마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살 수 있겠어
라는 말을 주변에서 곧잘 들어요.
나도 그렇습니다.
얼어붙은 경기는 세찬 바람처럼
방심하고 있던 나를 한 방 때려 버렸습니다.
지난밤 나는 돌아누워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헤쳐나가야 할 일이 너무 많았죠.
그러다 문득 그날 밤
퇴임식을 마치고 온 그날 밤
벽을 보고 돌아누워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중학생도 되지 못한 막내딸과
중학생이 되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하는 아들과
그 위로 대학을 다녀야 할 두 딸까지
아버지의 어깨는 무거웠을 테고
가슴은 짓눌린 듯 아팠을 겁니다.
그때 아버지가 왜 울었는지
나는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음속으로나마
괜찮다. 괜찮아.라고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려 줍니다.
동묘시장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았죠.
토요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저도 만 원짜리 원피스 두 벌을 사 왔어요.
흥정을 할 수도 있다지만
멋쟁이 할아버지 사장님의 모습이
괜히 흐뭇해서 그냥 들고 왔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입니다.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피식 웃다가
나는 한밤에 혼자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줬더라면
아버지는 덜 무서웠을까요.
가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