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뷰몽땅 Nov 04. 2024

그때 아버지가 왜 돌아누워 울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가장의 무게


가을이 깊어갑니다.

참 짧아요. 가을

그리고 할 일 없이 뒹굴대다

저는 동묘시장으로 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스러운 물건들이 가득했어요.

녹이 슬고 거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이

오히려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낡은 라디오 사자 모양의 라이터

그리고 LP판


돌아가신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하셨죠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엄마 손을 잡고 한 바퀴 휘 돌리시기도 했죠


엄마 역시 춤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평소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날에는 금슬 좋은 부부인 양

심수봉의 노래에 맞춰 댄스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당황스러운 우리들이었어요.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명 어제는 죽일 듯이 싸운 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늘 양복을 입고 다니셨어요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괜히 좋았습니다.

키는 작았지만 아버지는 양복이 잘 어울렸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입을 양복을 꼭 손수 다리셨어요

일주일 동안 아버지가 입을 셔츠 다림질을 끝내면

아버지는 언니들을 향해 말씀하셨죠


"니들은 다릴 거 없나 가져온나"

그러면 언니들은 교복을 들고 오곤 했어요.

막내딸인 저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워서

늘 손수건을 한 장 챙기고 다녔습니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내밀었어요.


"나도 이거 다려 줘요"


다리미의 열이 채 식기 전에

아버지는 웃으면서 수줍음 많은 막내딸의

손수건을 다리고 또 다려서 

빳빳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언니들이 채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정년퇴임을 맞으셨어요.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불러 옆에 앉히시고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보셨습니다.


나는 재미도 없는 야구를 보면서

아버지 옆에서 자리를 떠도 될까 

아니면 왜 불렀는지 물어볼까

망설였죠. 어린 시절 나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

부모님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어째야 하나 아버지가 우는데

누구한테 말할까 아버지가 운다고

그러다 바지 속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아버지 무릎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운다. 

아버지가 울 수도 있구나.



그리고 나는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갑니다.

아직은 멀었지만 얼마 남지 않았어요.

참 먹고살기 힘든 요즘입니다.

하는 일마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살 수 있겠어

라는 말을 주변에서 곧잘 들어요.

나도 그렇습니다.

얼어붙은 경기는 세찬 바람처럼 

방심하고 있던 나를 한 방 때려 버렸습니다.


지난밤 나는 돌아누워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헤쳐나가야 할 일이 너무 많았죠.

그러다 문득 그날 밤

퇴임식을 마치고 온 그날 밤

벽을 보고 돌아누워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중학생도 되지 못한 막내딸과

중학생이 되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하는 아들과

그 위로 대학을 다녀야 할 두 딸까지

아버지의 어깨는 무거웠을 테고

가슴은 짓눌린 듯 아팠을 겁니다.


그때 아버지가 왜 울었는지

나는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음속으로나마

괜찮다. 괜찮아.라고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려 줍니다. 




동묘시장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았죠.

토요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저도 만 원짜리 원피스 두 벌을 사 왔어요.

흥정을 할 수도 있다지만

멋쟁이 할아버지 사장님의 모습이

괜히 흐뭇해서 그냥 들고 왔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입니다.

할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피식 웃다가

나는 한밤에 혼자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토닥해줬더라면

아버지는 덜 무서웠을까요.


가장의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