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내 친구
그녀를 만난 건 성인이 되어서였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만난 친군데 참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남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자신이었어요.
마음이 잘 맞아서 잘 지냈습니다. 그녀는 패턴 디자이너였고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쌤이었습니다.
나는 영어를 나름 잘한다고 했고 그녀는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사고를 쳤습니다.
"언니. 나 토론토로 가."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입니까.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라고 했죠.
언제 가냐고 물었더니 한 달뒤에 간답니다. 이쯤되면 장난은 아닌 듯 해서 좀 더 관심을 두고 물어봤죠.
여차여차 해서 저차저차한 이유로 정말 집도 내놓고 짐도 싸고 버릴 건 다 버리고 그녀는 토론토로 갔습니다.
맨붕이었어요. 정말 그렇게 가버릴만큼 가까운 동네인가?
미련없이 돌아서서 가는 그녀를 보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나서 그녀는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그렇게도 하기 싫다던 공부를 토론토에 가서 다시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영어를 묻기 시작하는거죠. 저는 최선을 다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질문이 날아들더니 갑자기 뜸해졌어요.
나는 2년 뒤 핑계삼아 토론토로 여행을 갔습니다. 기회잖아요. 숙박비가 없는 해외여행.
그녀는 토론토 공항으로 배웅을 나왔죠.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전화도 하고 카톡도 하고 영상통화도 해서 그냥 옆집 사는 친구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달라졌다면 그녀가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긴 문장으로 외국인과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2년만에 토론토에서 직장인이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영어를 쓰는 회사 말이죠.
처음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것은 카페였어요. 아주 밝고 환한 곳이었습니다.
마치 동네 친구처럼 건들대면서 써빙하는 직원이 왔구요. 묻더라구요. 주문할래?
앗. 그런데 나는 말이 입 밖으로 하나도 안 나오는 거죠. 나는 문법에 통달한 영어쌤이었거든요
그녀가 주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자세하고 자신있게.
영어 쓰는 나라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멋있던걸요.
갑자기 그녀가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보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나보다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걸 느꼈죠.
분명 한국에서 그녀는 별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굳이 더 잘 살려고 하지도 않았죠.
흔한 말로 그냥 이렇게 살다 죽어도 별로 후회는 없다는 식이었어요. 그에 반해 나는 종종대는 편입니다.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조바심 내며 스스로에게 늘 채찍질을 하죠.
앞서가는 친구를 보며 뒤에 서 있을수는 없잖아요.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만 있던 찰나에
그녀는 유투브를 시작했습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거죠.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그런데 계속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녀의 발이 점점 넓어졌어요.
영어로 강연도 하고 영어로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영어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하고.
그녀의 발전은 거침 없었습니다. 그럼 나는 뭘 했냐고요?
나는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호시탐탐 나를 찔렀지만
나는 부동의 자세로 나의 자리에서 그저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그럴때마다 뭔가 끄적였습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자. 그렇게 나에게도 목표가 생겼어요.
그리고 몇 년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그녀와 다시 재회를 했어요.
얼굴 보며 이야기하니 참 좋더라고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와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들었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
스스로가 그리는 대로 인생은 바뀐다는 거죠.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미래가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음에 행복해하고 있었죠.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습니다.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그녀를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일도 아니었어요.
끙끙대고 있으면 끙끙댈 일만 생깁니다. 웃자고 들면 웃을 일이 더 많은 건 맞는 말이니까요.
그녀의 꿈은 컸고 구체적이었고 체계적이었습니다. 나의 꿈은 추상적이고 형체가 없었어요.
성큼성큼 달려가는 그녀를 보며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더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애매모호했던 나의 삶이 조금씩 그려졌습니다.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가 바라는 나.
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나는 내가 꿈꾸는 삶을 입 밖으로 말하고 다니기로 했어요.
될까요?
되겠죠.
될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요?
내 친구만큼 나도 욕심쟁이가 되었으니까 우후훗!
사람들에게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자극이 없으면 전류는 흐르지 않으니까요.
자극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