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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Nov 06. 2024

가을아 노올자

오늘도 나는 가을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평소처럼 나는 방문을 열어놓고 미니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이불을 덮는둥 마는둥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겠다고 다짐한 후부터 오히려 해야할 일들이 넘쳐납니다. 아직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 마음은 더 조급하고 그래서 종일 노트북을 껴안고 이것도 쓰고 저것도 만드느라 집안에서 종종거렸습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판국입니다. 오늘도 다섯개의 글을 썼고 세 개의 영상을 만들었으며 그러느라 찍어둔 사진들과 동영상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인물 좋은 사진들만 골라 내느라 바빳습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창문 한 번 열어서 바깥 풍경 한 번 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으니까요.


문이란 문은 콕 닫아놓고 종일 작업을 하면서도 덥다는 생각을 못해 놓고서 나는 선선한 바람을 몰고 온 가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다가 문득 왜 이렇게 추운거지 라는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선풍기를 끌 생각도 못했습니다. 9월에도 당연히 밤새 돌아가던 선풍기를 10월의 첫 날이라고 갑자기 꺼야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그 뿐인가요. 평소처럼 나는 얇은 홑이불도 냅다 발로 차 버리고 잠 속에서 허우적대며 춥다 춥다를 연발하고 있었답니다. 일어나서 선풍기를 끄면 될 것을. 일어나서 이불을 끌어다 덮으면 될 것을. 나는 그저 만사가 귗낳은 듯 웅크리고서는 선잠을 자다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지 뭡니까.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창 밖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였고 어딘가 모르게 낮게 드리운 듯한 아침 공기가 새로웠습니다. 드디어 가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얼마나 바빴는지 모릅니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 눈곱을 떼다 말고 카메라를 들고 문을 박차고 계단을 뛰어내려갔습니다. 왜냐구요? 나는 블로거니까요. 그것도 노가다와 가까운 여행 블로거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글감이 떨어지고 있는 찰나였으니까요. 그리고 문득 나는 걸음을 멈춰 세우고 말았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가을 풍경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예쁠건 뭐람. 이렇게 고울건 뭐람. 이렇게 찬란하려고 오랜 시간 기다리게 했나보다. 그렇게 중얼거렸답니다.


인플루언서가 되어 보겠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매번 일터로 삼아 버리면서 사실 나의 여름은 피곤에 피곤이 쌓일뿐 즐겁지가 못했습니다. 지금도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이번 가을 만큼은 좀 놀아야겠다 싶어요.훅 가버린 여름처럼 가을도 훅 가버릴까 봐서요. 



인플루언서도 못되고 디지털 노마드도 못되더라도 올 가을은 좀 놀아야 겠습니다. 가을 잡으러 다니지 말고 가을과 함께 놀아야 겠습니다. 인사도 없이 훅 가버리기 전에요. 


가을아 노올자. 나하고 노올자. 예쁜 가을아. 예뻐지고 싶은 나하고 노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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