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었던 기억
나는 다섯살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갔었네요. 하늘빛을 닮은 파란색 뿔테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오렌지색과 노란색의 체크무늬 점퍼를 입었네요. 요즘 유행하는 듯한 청바지를 그 때도 입었다니. 그리고 붉은 빛이 도는 갈색 신발을 신고 나는 한껏 멋을 부리고 있었어요.
이건 세 살 때인가요? 나는 작은 방의 장식장 서랍안에 동그마니 앉아 있습니다. 서랍장에 있는 물건들을 몽땅 꺼내어 놓고 그 안에 내가 들어가서 앉아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며 깔깔 웃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바닷가. 깡마른 엄마는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나를 겨우 안아들고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어요. 하얀색의 바지를 입고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은 엄마는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습니다.
엄마의 서랍 안에 곱게 정리되어 있는 사진들을 하나씩 들추어 내며 나는 생각나지도 않는 추억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의 기억에는 사라지고 없는 엄마와의 추억.
그 날부터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의 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엄마의 요양원으로 갔어요. 내가 들어가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부르는 엄마를 보며, 처음에는 어색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나는 엄마를 보고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들어섰지만 엄마는 시간이 갈수록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냉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시나보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원래 다들 그래. 저기 저 할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아들이 다녀가는데도 당신 누구요, 라고 한다니까. 그리고는 꼭 돌아설 때면 아들 이름을 부르시거든. 처음에는 그 아들이 그럴 때마다 막 울어. 출근 시간 늦겠다고 우리가 등 떠밀때까지도 그냥 그러고 서 있더니 이젠 익숙해 졌지. 누구야. 하고 부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면서 내일 또 올게요. 하고 가버려요. 그래도 참 대단하신 분이야. 벌써 3년 째 하루도 거르지 않거든. 주말에도 오신다니까."
엄마의 서랍 속에 있는 사진의 장수가 줄어들수록 나는 불안해졌어요. 엄마는 사진을 꺼내어 보여줄 때만 빙그레 웃으며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손가락으로 사진 속 아이으 얼굴을 톡톡 두들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이 아이가 이렇게 컸어. 내 딸이 이만큼 자랐네. 언제 이렇게 훌쩍 자랐니. 이런 말이었을까요. 지우 엄마. 그러니까 나의 새엄마와 내 사이는 각별하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새엄마는 엄마로서 해야 할 형식적인 도리를 철저하게 지켜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나는 편했습니다.
다른 엄마들 같았으면 두고 보지 못할 문제들을 새엄마는 못 본 척 넘어갔으니까요. 견학 다녀온 날은 집에 말하지 않고 학원을 빼먹어도 괜찮았고요.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새엄마는 그냥 넘어가는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어떨 때는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무.디.어.졌.습.니.다.
새엄마와 나에게 부모 자식간의 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동생 지우가 태어나고서야 그녀는. 엄마가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없다고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끔은 아빠가 묻기도 했어요.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매일 보는데 뭐가 보고 싶어."
아빠는 정말 그 말을 믿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