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가져오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어요.
우리 그 때, 그거 있잖아, 알지? 그거 말이야. 엄마 서랍에 있어. 그거 가져와. 다음에 올 때는 그거 꼭 가져와. 알았지?
오랜 시간 엄마 혼자서 살았던 그 집,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살았던 그 집의 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왠지 엄마의 공간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떨어서 살아왔고 남보다도 서로를 모른 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쩐지 남의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달랑 이부자리 하나와 좁은 거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영화보는게 좋아. 드라마도 싫어. 그냥 영화를 보는게 좋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제일 좋아하는? 그런 건 없어. 어떻게 제일 좋고 싫고를 구분할 수가 있어? 나는 그런걸 할 수가 없어.
엄마의 서랍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구라고는 책상, 서랍, 그리고 작은 옷장이 전부였으니까요. 엄마는 도대체 무슨 옷을 입고 살았을까. 예순이 다 되어가는 엄마의 옷장 안은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만큼의 옷만 걸려 있었습니다. 세 칸의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습니다. 맨 아래 칸에는 바지가 몇 번, 그 위의 칸에는 치마가 몇 벌, 그 위의 칸에는 블라우스와 셔츠가 몇 벌이 전부였습니다.
엄마 서랍에 있어. 그거. 그거 가져와. 혹시나 옷 사이에 뭔가 있을까 싶어 하나하나 들추어 보았습니다. 여기도 없고, 여기도 없네.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낡은 옷가지들 사이에서 엄마의 지독한 외로움이 갑자기 솟아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그거 꼭 가져와. 그거 꼭 가져와야 돼.
나는 엄마의 말을 되뇌며 서랍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텅 빈 냉장고 안에 작은 보석함.
갓난쟁이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와 그보다 더 젊은 아빠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인사를 했어요. 안녕, 엄마.
그 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 나 어릴 때 사진 있어?
그거 전부 jpg로 변환해서 저장해뒀지. 왜 보내줘?
아니, 아빠. 사진 말이야. 사진으로 있냐고. 아, 사진? 그건 다 버렸지. 그럼 아빠한테는 엄마 사진이 없어?
엄마?
아빠는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어..떤..엄..마? 우리 엄마.
내 엄마.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엄마 사진은 없는거지? 내 엄마 사진. 지우 엄마 말고 내 엄마.
선미야 무슨 말이야. 지우 엄마가 뭐야.
엄마에게는 소중하게 간직된 추억이 아빠와 나에게는 없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