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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09. 2020

영화 her


남자의 이름은 테오도르.

무표정한 얼굴로 등장하더니 이내 사랑스런 얼굴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세상 다정한 말들을 진심을 담아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이야기하는 대상이 누구일까 몹시 궁금해지는 찰나, 그가 말하는 대로 컴퓨터에 손글씨가 써내려 가지기 시작하고 그의 직업이 드러난다.

마침표가 찍어지고 프린트가 끝난다. 이제 다시 그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짊어진 사람으로 돌아간다. 그의 우울을 더 깊게 만드는 빨간색 재킷과 핑크 셔츠, 배바지를 입고서는 말한다.  


http://imoviequotes.com/


"Play a melancoly song"
 
 "Play a different melancholy song"


그러니까 지금 테오도르는 우울 내지는 다른 우울만이 함께할 뿐인 '우울 자체'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울의 원인은 당연 '사랑'이다. 아내 캐서린과는 이혼 절차 중에 있으며 그는 아직 사인을 할 결심이 서지 않는다. 캐서린은 그에게 오랜 세월 '현실' 그 자체였기에 그녀가 없는 그의 삶은 '현실'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이다. 이전에는 그녀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녀가 없는. 테오도르 혼자만 외로이 존재하는 '과거'.

회사나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나는데 외로이 홀로 바닥을 보며 팔짱을 끼고 멜랑꼴리 한 노래를 들으며 자신을 탓한다.


. 테오도르.

난 항상 혼란스러워.
내가 하는 거라고는 내 주변 다른 사람들까지 혼란스럽게 하고 상처 주는 것뿐이야.  


'현실'을 온전히 살 수 없는 그는 '가상'의 세계와 교류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가 있다. 그녀는 예민하며 우울한 그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는 듯 보인다. 그의 메일을 정리하고 중요한 일을 알려주며 그의 세세한 기분까지 알아차리고 적절한 해결을 제시하며 바디가 없이도 서로 만족할 만한 섹스를 한다.

가능한가?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든 의문이라고 한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만족할 만한 섹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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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사만다의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마음(heart) 이란 게 꽉 채워진 상자 같지 않다고.

상자는 다른 물건을 더 채우기 위해 크기를 늘릴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은 사랑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해 크기를 늘릴 수 있다고. 그래서 사만다는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보려고 한다. 테오도르에 대한 사랑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해서.

테오도르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내 마음의 크기는 여기까지로 정해 놓고서는.
더 들어와도 넘쳐 혼란스럽고 덜 들어와도 비워 외로워한다.
우리는 마음의 크기를 늘려 사랑을 더 채워야 한다.



. 사만다.

재미있지 않아?  과거는 그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야.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거지. 내가 그렇게 부족한 애라고. 그러다 깨달았어.
난 자꾸 그때 일을 자꾸 기억하고 또 하고.
  내게 문제가 있는 걸로 기억한다는 걸.

테오도르의 결혼 이야기를 하며 사만다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걸 말한다.

과거는 그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자꾸 그때 일을 잊고 싶은 나에게 캐묻고 캐물어 결국은 마음에 구멍이 나게 하고 부족한 나를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테오도르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그만 머무르고, 이제 그만 너의 실패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라고 말이다.


사만다는 그렇게 '과거'의 자신에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테오도르를 밖으로 나오게 한다.


마지막,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마음을 정리하고 그녀가 얼마나 그의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또 영원할지에 대해 고마워하며.



내 속에는 늘 네가 한 조각 있고, 그리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던
네가 세상 어디에 있던
사랑을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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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미.

우린 여기 그냥 있는 거야. 아주 잠깐.
그리고 여기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난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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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와 에이미처럼. 우리는 가끔 얼마나 나 자신에게 가혹한지.

널 위한 일이라고,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이렇게 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나 자신은 저만치 두고 '현실'의 일들을 감당하기 바빠 우울이 짙어지고 마음의 구멍이 커지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늦게나마 자신을 돌아보면 가엾은 자신을 보고 우울을 벗으려 구멍을 메우려 또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많이 늦지는 않기를 바란다. 나와 우리 모두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나 자신에게 우리 자신에게 행복을 허락할 수 있기를.


영화보다 ost가 더 좋을 수 있다는게 흠이라면 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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