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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Aug 30. 2020

3.관계의 Fantasy.

남녀관계.  남편을 만나다.

당근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역시 당근은 나에게 정말이지 소중함의 정점을 찍게 된 것이다.

남편은 당시 의경. 군.인.이었다. 매우 잘생겼다는 당근의 말에 그래 봤자 난 군.인.과 소개팅하는 거야 하며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나간 자리였다.


당근의 말처럼 남편은 잘생겼으나
지나치게 밝았고 지나치게 반듯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지나침이었다. 남편은 평소 반듯한 사람이었고 모나거나 삐뚤어진 데가 없어 밝은 면이 그대로 드러난 것뿐이었다. 그러나 23살 내 눈에는 그의 반듯함과 밝음이 지나쳐 성가시게 느껴졌다.


앞서 인복이 많다 자랑하였으나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지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낮은 눈을 자랑했다.
친구들은 낮은 눈이라 하고 난 그걸 사랑의 시련이라 부르긴 했지만.


다들 그렇듯 처음엔 멋있고 괜찮아 보였다. 지나치게 자유로워 남들 신경 안 쓰고 사는 듯 하지만 나만은 그에게 특별하다는 환상을 가지게 만드는 능력이 장착되어 있는 겉멋이 철철 넘치던 그들. 물론 친구들의 바른 눈에는 예의 바르지 못하며 밝지 않고 어두운 그들이 맘에 들리 없었고 난 그걸 알아볼 리 없었다.


이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의 자유와 어둠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이러한 말하기도 창피한 그들과의 판타지 속을 헤매다, 낮은 눈 일지언정 그래도 미련하지는 않아 자각이란 걸 하게 되어 판타지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보기 시작하니 이건 뭔가. 심히. 아니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그들과 나의 관계를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그들은 나 보다는 그들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아꼈으며 자기 자신의 필요를 찾기에 부지런했고 결국은 그러다 가끔 지칠 때 사랑이란 걸 하려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들이 나에게 심어놓은 환상은 현실에 눈 뜨자마자 너무 힘없이 무너졌으며 알게 된 이상 다시 돌아가 되풀이할 맘도 자신도 들지 않았다.

나쁘다 비난하지는 않는다. 우린 어렸고 자기 자신조차 아직 온전히 사랑할 줄 몰라 열심히 배워가는 중이었으며 그러기에 누군가를 받아들여 사랑을 하기에는 아직 미숙했던 것뿐이다.




이러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다행히 그때마다 자각과 각성을 되풀이하며 점차 낮은 눈에서 그나마 바닥은 아닌 상태의 안목을 가지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날도 아주 좋았던 4월. 신촌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말과 행동에 숨김이나 감춤이 없어 모르면 모르는 데로
싫으면 싫은 데로 좋으면 좋은데로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는데 거침이 없고 거리낌이 없었다.


소개팅이 처음이라고 이렇게 하는 게 맞냐며 매 순간 나에게 질문을 해댔고(미안하게도 소개팅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지만) 이런 옷과 신발은 정말이지 불편하다고 유선 씨도 그렇게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 다니면 발이 많이 아플 테니 다음에 만날 때는 서로 편한 차림으로 만나자고 유난히 하얗고 고른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그쪽이랑 편한 차림으로 다시 만날 것 같진 않은데... 3초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순간 같이 웃어 버렸다.

이빨이  너무 밝아서.


 밝다 밝다 이빨까지 밝은 남자.
어둠을 사랑하는 내가 밝음의 남자를 만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고

어둠의 여자와 밝음의 남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제법 조화롭게, 재미도 있게 살고 있다.


아. 가끔 서로 이렇게 쳐다볼 때가 있다.

난 지금 널 결코 이해할 수 없어.

넌 지금 날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럼, 우리 거기까지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잠깐. 널 내버려 두겠으니

잠깐. 거기 있다 나와.

완벽히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해받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글을 마치며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쓸까. 더 멋지게 우리 부부 사이를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할 때, 여전히 유난히 밝고 고른 이빨로 넷플릭스를 보며 웃고 있는 남편이 사랑스러워 갑자기 아주 단순한 질문이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묻는다.


오빠. 나랑 살아서 행복해? 난 행복한데.
어. 유선아. 오빠가 죽기 전에 얘기할게.

헐.이 된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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