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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Aug 12. 2021

굴 껍질 까는 소리

음식에 얽힌 추억



오래 전, 처음으로 프랑스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밥을 먹을 때 굴이 나왔었다. 얼음을 깐 그릇에 얹어 내온 석화에 다진 양파, 와인, 식초를 섞어 만든 소스를 한 스푼 흘려놓고 후루룩 먹는 방식이었다. 


곁들여 나온 채소는 엄지 손가락 크기의 빨간무였다. 그걸 실온에 적당히 물렁해진 버터에다 찍어 소금을 뿌려 먹는 거였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피곤하고 깔깔했던 입맛이 확 살아나는 산뜻하고 향기로운 음식들이었다. 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날 이후로 굴을 즐기게 됐다. 


파리에서 살던 아파트 앞 거리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장이 섰는데, 시즌이 오면 굴을 궤짝으로 놓고 팔았다. 가끔씩 그걸 사서 친구들과 굴 파티를 했다. 굴을  까느라 싱크며 식탁이며 난리가 났지만 너무 맛있어서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 굴을 프랑스처럼 흔하게 즐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럴싸한 씨푸드 레스토랑에나 가야 겨우 몇 개씩 먹을까. 비싸게 치이고 흔하지 않아서 굴을 양껏 먹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큰 아이를 가져 배가 동산처럼 부풀었을 때 남편이 참여하는 학회에 따라붙어 뉴올리언스에 가게 됐는데, 거기에 유명한 굴 맛집이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멕시코 만 산지 굴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임산부는 날 생선 종류를 먹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 망설여졌다. 눈물을 머금고 굴튀김을 시켰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해물이 귀한 중부에 살고 있었던 때라 신선한 굴을 눈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게 몹시 원통하고 서러웠다. 


딱 한 개만 맛볼 요량으로 생굴 한 더즌을 시켰다. 나머지는 남편이 먹으면 되니까. 바 안쪽에는 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오이스터 바텐더들이 믿기 어려운 속도로 끝없이 굴을 까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쩌거덕 쩌거덕 굴이 갈라졌다. 


이윽고 기다렸던 생굴 한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고, 매끄러운 껍질 안쪽에 싱그럽게 누운 굴 하나를 감격에 겨워 집어들었다. 결국 한 점이 아닌 두 점의 굴을 먹었는데, 아마 난 평생 가도 그때처럼 맛있는 굴은 맛보지 못할 것이다. 굴에서 단 맛이 난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내 인생 최고의 굴이었다. 


이후 중부를 벗어나 바다 근처에 살게 되어 이제는 식당에 가서 종종 굴을 시켜 먹는다. 아이들도 굴을 좋아해서 한번 먹으면 적어도 2 더즌은 주문하는데 그래봐야 한 사람이 여섯 개 먹으면 끝. 그렇게 아쉽게 먹어도 나중에 계산서 보면 아찔하다. 굴은 그냥 입맛 돋우는 애피타이저였을 뿐인데도. 


근처에 굴을 자루로 파는 곳이 있다해서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파리의 아파트 앞 시장처럼 일주일에 두번만 판다고 한다. 보니까 자주 가는 바닷가 식당 바로 옆이고 집에서 오분 거리다. 제대로 된 간판이 없어서 여태 몰랐다. 굴 50개 짜리 한 자루가 30불. 


칫솔로 껍질을 박박 씻는 건 내가 하고, 남편은 새로 산 가드닝 장갑을 끼고 비장하게 굴칼을 꺼내들었다. 쟁반에 얼음을 깔아준 뒤 나는 소스를 만들었다. 레몬즙을 내고, 샴페인 비니거를 섞고, 와사비와 설탕을 조금 집어넣고 빨간양파를 다져넣은 소스. 


신들린 듯 깐 굴 50개가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우리는 교훈을 얻었다. 다음에는 두 자루를 사야한다는 걸. 큰애가 말하길, 소스가 끝내준단다. 굴과의 합이 ‘대박’이라나. 그저께 얻어온 부추로 부친 전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굴 먹다가 전쟁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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