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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약초콜릿 Dec 19. 2021

15. 노력도 효율성 따져가며 해야 하는 것.

오늘날 노력은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노력만으로 통하는 세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성공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닌 집단의 힘이 작용해야 가능하다는 연구와 주장도 있다. 이제 '노력하면 다 된다'를 믿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 한때 경제성장률은 폭주했고 때마침 사회활동을 막 시작하거나 한창인 세대들에게 성공과 부는 성실하면 머지않아 거머쥘 수 있는 유형의 미래였다. 이들 모두는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루려 노력했고 노력은 달콤한 성과를 안겼다. 이들의 끈기와 의지가 없었으면 지금의 발전은 아주 먼 훗날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차세대가 현재를 주도할 참이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차세대는 의욕도 끈기도 야망도 바닥난 저질 기초체력으로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다며 기성세대로부터 조소를 산다.

현세대는 기성세대의 야단에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사회를 직시한 후 다그치라고 반박한다. 이러한 세대갈등은 각 세대가 접한 조건들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세대갈등의 깊은 골은 점차 계층갈등으로 옮아간다. 기성세대의 노력한 모두가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그에 따른 부의 차이가 곧 계층을 분리했다. 서서히 벌어지는가 싶었던 계층 간격은 전 세계의 기류가 그렇듯 간극으로 치달았다. 더는 빈부격차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본은 어느 일정 시점부터 선택된 자들에게만 집중되고 축적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부를 쌓았지만 대부분은 대대로 상속받은 자본가들이다.


속칭 원래 가진 자들이 후손들에게도 부의 광맥을 젖줄처럼 연결시켜 주는 셈이다. 이는 당연히 이럴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 사회는 신분제도를 운영하며 신분에 따른 부의 크기가 달랐다. 신분이 미천한 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말 것이 자본 즉 돈이었다.


하지만 산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평등사상으로 신분제도가 깨지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에 욕심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어제는 미천해서 가난했던 사람도 셈속에 밝고 근면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을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거부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에 돈을 모은 비법을 공개했다.


'야망과 열정을 갖고 노력했더니 그 보상이 뒤따랐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지침을 머릿속 깊이 새겨 실천했고 시대의 조류가 맞춤 맞았던 시절을 탔던 세대는 거부들의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정말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시절은 변했고 악화된 면도 더러 있다. 현세대의 조건은 분명 경제가 상업과 일맥상통해서 번영하던 시대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이제 경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과 연계되어 허파처럼 오르락내리락 숨을 쉰다. 여기에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까지도 합세해서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다.


스펙을 아무리 쌓고 올려도 불확실한 조건에서 순순히 채용과 경험의 문을 열어줄 기업이나 자산가는 흔치 않다. 그들 또한 현시점에서는 베풀고 나누기보다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해 그간 모은 자본을 지키고 좀 더 안전하게 불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에 발붙이기도 쉽지 않은데 본인이 어떤 재능과 특기를 가졌는지 판별하 기는 더욱 어렵다. 오히려 남들의 행로를 따라가는 편이 실패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통하기까지 한다. 물론 남을 따라 하는 것도 노력의 일종이다. 이마저도 포기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노력할 준비를 마쳤고 이제 그 대상만 찾으면 열정도 쏟을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도 제자리라면 우선은 세상을 욕해라. 한 번은 그러해도 좋다.


그러나 불신이 깊어지고 길어지면 자포자기하고 더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못하는 사막화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일과가 뚜렷하지 않고 방향 설정도 없는 매일의 습관이 몸에 굳어지면 생각 또한 정체를 잃고 먼지처럼 아무 데나 떠다닌다. 몸과 마음(생각) 은 별개로 마음이 몸을 지배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몸이 움직이고 느끼는 대로 생각이 트이고 길을 밝힌다. 그러므로 품은 열정을 오랫동안 간직하려면 몸이 필요 이상으로 느긋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있다.



감독 이상근 영화 엑시트의 용남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력을 단련한다. 체력단련은 그의 직업능력에 필요한 일도 아니고 미래의 포부를 키우는 목적도 아니었다.

는 아직 여실히 깨닫지 못했지만 잠시도 꺼지지 않는 어떤 열정의 미약한 불꽃을 지켜내려 자신을 방치하지 않은 것일 테다.


용남은 비록 당당히 내세울 것 없는 보잘것없는 처지였지만 노력을 몸에 새겼고 위기의 순간에 사력을 다하는 열정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용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면은 그의 노력은 사회와 교육기관이 성공을 목적으로 연습시킨 효율적 노력이 아닌 순전히 사적인 발로였는 점이다. 어쩌면 진짜 노력의 참모습이 아니었을까?


노력이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노력은 야속하게도 배신을 일삼고 내 자신이 얼마나 누추했는지 실감하도록 몰아세우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배운 것이 부족해서 노력이 쓸모없는 영역은 널렸다. 바로 내가 당신이 주인공이 되리란 희망을 품으라는 '앞으로 다 잘될 거야.' 라는 조언을 늘어놓진 않겠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력조차도 내쳐버린다면 불안감을 키우고 그 어느 것도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설령 그것이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실패로 끝이니 좌절하더라도 언젠가는 당신만의 지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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