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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허브 Mar 27. 2023

크로스핏이라는 새로운 세계

요가도, 필라테스도 아니고 왜?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간다. 크로스핏은 역도, 체조, 유산소 등 여러 종목이 혼합된 운동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운동은 웨이트, 요가가 전부였다. 크로스핏은 코치가 매일매일 운동 시퀀스를 짜준다는 점에서 웨이트와 다르고, 사람들과 팀을 이뤄 교류한다는 점에서 요가랑 달랐다. 두 지점 다 무척 매력적이었다. 대학생 때만 해도 운동하는 걸 무척 싫어했는데 직장인이 되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배우게 됐다. 덕분에 허리가 3인치가량 줄었고 어깨에는 (아주 작지만) 삼각근이 생겼다. 늘어난 체력만큼 하고 싶은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크로스핏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매일 나의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쉽지 않아서 오히려 승부욕을 자극하는 운동이다.

 

<가짜 사나이>라는 유튜브 콘텐츠를 좋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던 적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UDT 훈련 과정을 체험하는 내용인데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자신의 한계,라고 표현하면 덤덤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만 영상 속 상황은 더 극한이다. 정신을 잃기 직전 눈알이 돌아가고, 절규에 가까운 포효를 하며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것이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왠지 소파에서라도 자세를 고쳐 앉게 됐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테스트해 볼 기회는 없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극한인 상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크로스핏을 하며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라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400m를 먼저 달리고 차례대로 스쿼트, 풀업, 버피를 진행해야 했는데 2라운드까지 진행하니 힘이 다 빠졌다. 3라운드째는 400m를 제대로 뛸 수도 없었다. 추석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마라톤에서 걷지만은 말아야지' 다짐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힘을 쥐어짜도 5초 이상 달릴 수 없었다. 나 역시 절규에 가까운 포효를 하며 3라운드를 겨우 마쳤다. 코치가 다가와 이제 4분이 남았으니 쉬라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겠다고 했다. 400m를 다시 뛰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느꼈다. 이게 내 한계구나. 나는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구나.


3.5라운드를 애매하게 끝내고 바닥에 뻗었다. 얼굴이 찜기가 된 것처럼 후끈거렸다. 아마 몸 뒤에 검은 벽이 있었다면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눈으로 보였을 거다. 그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동시에 두려워졌다. 1.6km도 겨우 뛰는 내가 어떻게 10km 마라톤을 완주한단 말인가.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등지고 박스(크로스핏 체육관) 바깥으로 향하는데 코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정면에 있는 블랙 보드에 기록을 적어두라는 것이었다. 순간 '5라운드 완주도 못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하얀색 마카를 건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날인데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래도 기록을 남겨두면 다음에 비슷한 세트를 할 때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6km 달리기, 45파운드 (약 22kg) 스쿼트 9개, 밴드 풀업 15개, 버피 27개. 첫날의 기록이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정신의 지구력을 키워준다. 괴로운 일을 자진해서 어떻게든 해결해갈 만한 힘이 내 안에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의 경우에는 첫 한 달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로 시작되는 긴긴 번뇌가 늘 수반됐다. 예전에는 투자 대비 아웃풋이 확실하겠다는 판단이 서야 시작했다. 지금은 그냥 한다. 의미를 찾고 나서 달린다기보다는, 달리면서 의미를 찾는 쪽에 가깝다. 하다 보면 늘겠지라는 대책 없이 속 좋은 생각도 한다.

나약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스스로 더 이상 나약하지 않다 느낄 때까지 하면 된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다. 근육통을 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당한 스트레칭 후 다시 근육을 쓰는 일이다. 나 역시도 어제까지 햄 스트링이 뭉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운동을 가냐며 툴툴거렸는데 옆자리 선배가 그럴 때일수록 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근 후 데드리프트를 하며 햄스트링을 자극했더니 한결 걷기 수월해졌다. 뭉친 채로 두면 고통이 더 오래갔을 테다. 나약해지지 않을 때까지 일단 움직여보자. 나의 작은 성취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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