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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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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Dec 05. 2020

아이라는 세계

가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다시 보고 싶다.

아이들이 크니까 함께 보고 싶은 마음도 큰데, 아쉽게도 넷플릭스에 없다.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상륙하면 가입하거나 그냥 IPTV에서 구입할까 할 정도로 아이들이랑 보고픈 영화다. 라일리의 구슬들이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다양한 빛깔이 어우러지고, 라일리도 자연스레 성장하는, 그리고 감정들이 그 모습을 넉넉한 웃음과 함께 지켜보던 모습이 그리 멀지 않은 일처럼 느껴져서 같다.


지난 5월, 1호가 갑자기 펑펑 운 날이 있었다. 돌 이전부터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 부모와 살아온 터라 어지간하면 울지 않는 아다. 그런 1호가 말 그대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짐승처럼 울어댔다. 둑 터지듯 서글픔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 아이는 한동안 울지 않았다. 오늘, 또다시 그랬다.


최근 몇 달간 그런 일은 있었다. 이유불문하고 마음이 상했을 때, 얼굴의 모든 근육이, 눈동자가, 눈썹 터럭 하나하나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글픔, 분노, 짜증... 어느 것이든 금세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투명했고 온전했다. 또 여러 감정들이었다. 언제였더라? 그런 모습을 보며 '아 정말 크고 있구나' 싶었다.


오늘도 시작은 사소했다. 요즘 날이 춥고 건조해 바디로션과 오일을 섞어 발라주는데, 아빠가 로션만 바르자고 했다. 엄마랑 이미 약속 다 했는데 왜 그러지 싶어 아이는 거부했고, 이내 둘 다 마음이 상했다. 나는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에 다양한 어투로 <도서관 생쥐>를 읽어주며 1호의 감정구슬이 다른 색이 되길 바랐다.


그런데, 동생이 문틈 사이에 손을 넣은 줄 모르고 아이가 문을 었고 비명과 곡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꾸중 아닌 꾸중이 나오자 1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으로 자꾸 표정을 감췄다. 몇 마디로 다독여보려 했더니, 아이는 두 눈이 시뻘겋게 된 채로, 다시 짐승처럼 서글픔과 서러움을 토해내다 잠이 들었다.

1호의 셀피 아닌 셀피

아이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0에서 무한으로 나아가는 존재를, 0에서 조금씩 채워져가는 세계를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일 같다. 마냥 밝기만 했던 세상이 다양한 색과 빛, 어둠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 같다. 아마 그 시절의 나도 그랬겠지. 운이 좋구나. 한 세계가 만들어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이토록 근접해서 지켜볼 수 있다니.


가끔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았으면 하는, 애먼 생각을 해본다. 먼 훗날 이때를 떠올리면 너무 반짝여서 많이 그립겠지. 일단 <인사이드 아웃>부터 다시 봐야겠다.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의 '빙봉'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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