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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Dec 17. 2020

시간여행을 기다리기보다는

황경상·임아영, 아빠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 Caroline Hernandez

서울의 옛집은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그 평수, 약 13평이었다. 방 하나는 안방, 나머지는 1호가 태어난 뒤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썼다. 작은방은 네모반듯하지 않고 한쪽 모서리가 둥그랬는데 그 방향으로 창이 나있었고, 방범창 너머로 가파른 경사로가 보였다. 


수용자 아닌 수용자처럼 나는 그 비탈길을 오고가는 모든 존재를 부러워했다. 푸석푸석한 시절의 얼굴로, 인터넷에서 산 싸구려 베이지색 수유복을 입고, 아이가 잠이 들면 무릎을 동그랗게 모은 채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글로 쏟아내던데, 나는 버거웠다. 그래도 가끔 몇 자도 끄적이고, 사진이라도 올리면 숨통이 조금 트였다. 누군가의 좋아요나 댓글이 내가 세상과 연결된 존재였다는 걸 잊지 않게 해줬다. 하지만 더 많은 기록을 할 힘이 없었다. 


이제는 집도 달라졌고, 수유복은 버린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내겐 힘이 없다. 쓰는 사람이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잘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업무시간 전후에 쓸 에너지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 수준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따금 '기록 의지'가 솟는 순간이 있는데, 아이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플 때다. 영아시절에는 잔디인형처럼 물만 부어주는 존재 같았다. 너무 쑥쑥 크기도 했지만, 아무 교감 없이 바라보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옹알이가 단어, 구절, 문장이 되었고 이제는 짧디 짧은 논리까지 붙었다. 


오늘 2호는 빨간색 옷을 입은 자신을 '사과'라고 놀리는 1호에게 "나 사과 아니거든!!!!! 나 사람이거든!!!!!"이라고 항의했다. 제 몸 하나 뒤집지 못하고, 소근육을 사용하긴커녕 자꾸 입에 주먹을 넣던 시절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그로 인한 경이로움이 있다. 또 그로 인한 아주 약간의 슬픔이 있다. 너무 반짝이는 시절이라서. 




기자 부부가 쓴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다>에도 비슷한 반짝임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이야기들에 웃음 짓다가도 코끝을 찡하게 하는 책이다. 상투적인 평가지만, 그만큼 보편적인 부모들의 이야기라 힘이 쎈 책이다. 


엄밀히 따져 육아에 '보편'은 없다. 아이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각기 다른 인간이니까. 그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들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서툴고 또 서툰 양육자들의 순간들이 조금씩 닮아있을 뿐이다. 


사실 양육자가 서툰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상황이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상황은 마지막으로 겪는 일이 된다. 


요즘 우리 애들은 점점 엄마아빠를 찾지 않는다. 모처럼 쉬는 날, 엄마가 집에 붙어있는데도 1호와 2호는 자기들끼리 바빴다. 각자 드레스를 입고 라라핑이니 뭐니 상황극을 하는데... 나는 자유였다, 앗싸. 


그러다 문득 즐거움과 생동감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 저절로 손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혹은 두 팔을 벌려 안게 된다. 냉장고에 장기보관해둔 볶음밥에 계란지단 휘리릭 얹어줬는데 싹싹 비우고 엄지를 척 들면,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애들한테 한 달에 2번? 3번?도 밥 안 주고 살까 싶을 때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아이들은 아이들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는 관계다  "엄마가 제일 좋아", "나는 엄마딸"이라며 깔깔대는 아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새롭고도 온전한 사랑을 내게 주고 있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만약 시간여행의 기회가 온다면 다만 한 가지,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순간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을 것 같다." 

-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다>, 181쪽 중에서 


몇 번을 다시 읽어본 구절이다. 너무도 유명한 영화 <어바웃타임>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포기했던 마음으로, 양육지라면 아이들의 어린시절로 시간여행하고 싶으리라. 다만 내게 주어진 수명 안에 그런 기회가 주어질 확률은 로또당첨보다 낮으니까, 나는 좀더 써야겠다. 너무 반짝이고, 너무 그리울 오늘들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양육자들이 '아이들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수집'할 기회를 놓치지 않길 빈다. 우리의 오늘보다 아이들의 내일이 더 채워질 수 있도록, 육아휴직이 '출세포기' 혹은 '퇴사'의 대명사 자리를 하루빨리 박탈당하길 바란다.


"버거울 때도 많지만, 지금이 아니면 지나갈 아이들과의 순간순간에서 더 나아지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다. 아내와 나는 함께 아이들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수집하는 인생탐험대다." 

- 같은 책,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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