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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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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Feb 11. 2023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멋대로

"어차피 니 맘대로 할 거잖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남편에게 물어보면 꼭 이 대답이 돌아온다. 너무 맞는 말이긴 하다. 돌이켜보면, 제법 내 맘대로 살긴 했다. 부모님 반대에도 이과 가고, 다들 도통 이해하지 못해도 기자 준비하고, 아무 생각 없이 결혼해서 애까지 둘 낳았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대단한 모험은 하나도 없었다만, 그래도 참 멋대로 살았다.

그제 첫째가 슬그머니 오더니 "엄마 화내지 말라"라고 신신당부부터 했다.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 화를 내든지 말든지 하지"라고 대꾸했더니 주저주저하며 이실직고했다.

"아빠가 닌텐도 주문했어."

게임을 좋아하는 이모씨와 그의 딸들이 연초 소소한 작당을 벌이다가 나의 거부에 좌초됐던 일인데, 황당했다. 나는 게임에 별 관심이 없어서 아예 하지 않는 쪽이다. 어릴 때 엄마 몰래 오락실 갔다가 들켜서 혼난 기억이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로 남아서일까. 아무튼 남편은 디아블로, 아이들은 쿠키런에 매진하는 주말 풍경이 영 마뜩지 않았는데, 다 떠나서 닌텐도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질렀고, 애실토했다. 언젠가 택시비 7만 원 내고 귀가했다는 고백을 털어놨을 때 남편이 말했다. "남이 들어서 화낼 것 같은 얘기는 하지 마." 아뿔싸, 1호야 너는 왜 이리도 나랑 성격이 똑같은 거니...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제일 '내 맘대로' 하는 사람이 나다. 내 맘대로 수백만 원 내고 공부한다고 대학원 가면서, 즈그들 맘대로 수십만 원 내고 닌텐도 사는 걸 추궁하는 건 좀 불평등하지 않나. 라고 생각해야 속 편하지, 어차피 닌텐도는 빠르면 오늘 온다는데 어쩌랴. 가정경제 파탄 안 나고 불화의 씨앗이 싹트지 않는 선에서 우리 모두 자기 맘대로 살도록 해봅시다.

남편의 만류를 뚫고 역시나 '내 맘대로' 나갔다가 돌풍 맛을 제대로 봤던, 지난 1월 수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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