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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Mar 12. 2023

나는 결혼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출산 후 딸의 고백

딸만 둘 둔 나는 큰 딸을 키우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쓴맛을 철저히 맛보았지만 작은 딸은 내게 참 살가운 딸이었고 소통이란 단어에 관심조차 없는 남편을 대신해서 내 마음을 잘 읽어주고받아주는 상담자의 역할을 해준 딸이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지내는 일을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섣부른 결정이었지만. 결혼한 딸과 지내는 건 그와 함께 지내는 일뿐 아니라 사위와 손녀까지 함께 지내야 하는 일이었음을 가볍게 생각했다. 참 어리석었다.

그러나 딸과 동거하면서 겪은 가장 황당한 일은 딸의 이런 고백이었다. 평소 살가운 그의 성격으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식에 대해 소홀했다. 심지어 애완견에게 쏟는 정성만도 못한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에는 산후 우울증인가 싶어서 애써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모습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살림이나 육아를 남편과 나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저울로 달아낼 듯 일일이 따지는 모습에서 세대차를 현저히 느껴야 했다. 나 역시 맞벌이를 오래 했지만 프리랜서로 일이 들어오면 먼저 큰 곰솥에 사골국부터 끓이는 등 며칠간 먹을 음식 장만부터 했는데. 아무리 바빠도 남편의 밤잠에 행여 방해가 될까 조심스레 우는 아이를 달랬는데. 남편 혼자 아이를 보라고 맡긴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며칠을 야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시댁 행사에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이 모든 게 딸에게는 전혀 해당이 없는 일이었다. 시댁에 대한 책임도 최소한이었고, 심지어는 각자의 부모에게 각자 효도하자는 원칙을 세운듯했다. 육아에 대한 딸의 원칙은 더 기가 막혔다. 자기는 죽다 살아날 정도로 힘들게 아이를 낳았으니 남편도 그만한 몫을 감당해야 한다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남편이 더 적극적이었다. 코로나에 걸려서 아이가 열이 높게 올랐을 때도 한밤중에 일어나 냉수 마사지 시키는 것도 아빠였고 둘이 있을 때 아이가 똥을 싸면 냉큼 안아다가 남편에게 데려다주었다. 그러면서도 육아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면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애견을 무릎에 앉히고 자기 일을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가사와 육아에는 흥미도 없고 재주도 없는데 비해 회사에서 맡겨진 일은 너무 재미있고 성취감을 느낀다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애교도 많이 부리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정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의 그런 태도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그런 성향인 줄 알았으면 결혼을 시키지 말걸, 애를 낳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그냥 놔둘걸(하긴 사위가 아가를 그리 소중히 여기는 걸 보면 아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래저래 후회가 되었고 그런 만큼 사위에게 괜히 면목이 없고 아가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우리 때와 달리 결혼도 자녀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고 자기 인생이라 주장하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가족주의 가치관에 철저한 남편은 그런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을 이기적이라 비난을 퍼붓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남녀평등을 넘어서 여성우월주의에 가깝게 교육받아온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과 육아는 자기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고 동시에 짊어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인 것이다. 또 육아에 드는 경제적 육체적 수고가 지대한데 비해 국가에서 출산장려책으로 내놓은 대책은 참으로 피상적인 것이다. 한편 아이 편에서 생각해도 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게 여간 고단하지 않을 것이고 세기말적 상황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불안한 세상에 태어난 게 결코 복된 일만은 아닐 것 같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고달픈 세상이 될 가능성도 많다. 이렇게  보니 나 역시 딸의 생각에 많이 동조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출산 후 육아하면서 딸과 사위는 부부싸움을 많이 하며 딸은 이혼까지 생각하는듯 했고 한 집에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급기야 내 입에서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차라리 이혼해라. 어차피 너는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사위는 딸에 대한 애착이 크니 아이는 그에게 주고 네가 양육비를 대라. 나는 절대 혼자된 네 딸을 키우는 수고를 평생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그런데 문제는 사위가 평생 혼자 살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면 네 딸은 계모 밑에 크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네가 감당할 것 같으냐?'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세게 나가니까 딸이 좀 수그러진듯했지만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았기에 그의 갈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손녀가 부모의 마음을 읽었는지 너무도 심한 '아빠 바라기'이고 내가 가끔 서운할 정도로 친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밥을 먹일 때도 아빠가 먹여주기를 원하고 심지어 저녁밥을 먹다가도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내 손에 쥔 수저를 빼앗아서 아빠가 먹여달라 하고 주말에는 친할머니댁에 가자고 옷을 들고 나와서 졸라대곤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외손녀를 보느니 파밭을 매겠다'는 속담을 중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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