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터, 명절에 아빠에게 제사를 지낸다. 아빠는 내게 아직도 이 지구 어디 먼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인 것 같은데.그 날엔 정말 아빠가 우리와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간단하게 제사상 겸 아침 밥상을 차리며 아빠가 좋아하던 음식 이야기를 나누었다."아빠는 돼지고기를 참 좋아했어."라는 엄마의 말을 시작으로 "햄버거 진짜 좋아했는데, 살 찐다고 너무 못먹게 했네. 못 먹게 하지 말걸." 하며 이런 저런 아빠가 좋아했던 것들을 이야기 하다가. 문득,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했어."하는 음식에서 나로 주제를 넘겨버린 맥락없는 생각이 들자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그래,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했다. 이 말은 중의적이다. 아빠에게 1순위는 나였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해 준 사람은 아빠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빠는 날 좋아했다.
자기를 꼭 닮은 딸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아빠가 어디 있겠느냐만, 우리 아빠는 두 딸 중에서도 날 특별히 좋아했다.
유치원이 끝나고 아빠의 작은 인삼가게로 달려가면 아빠는 내게 언니,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주며 둘만의 은밀한 비밀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온갖 취준생 스트레스를 다 부린 후 겨우 겨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막내 작가가 되었을 땐 언니가 약사가 되었을 때보다 더 크게 온 동네방네 여기 저기 자랑을 하고 다니는 통에 낯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명절 때 성묘를 다녀온 뒤 산 속에서 주워 온 밤을 주머니에서 가득 꺼내 내게 보여주었을 때 너무 신나하던 내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던 사람. 그 기억으로 투병을 하면서도 잠깐 산책을 나가면 그렇게 밤을 주워와 나를 꼭 보여주던 사람. 정신이 온전치 않아지면서 시계를 못 보던 시기에도 나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에는 베란다에서 한참을 창문만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던 사람.
아빠가 제일 좋아했던 건 나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터진 눈물은 그리움이 되었고, 그 그리움은 괴로움이 되었다. 아빠가 나를 제일 좋아할 때 난 나를 제일 좋아했다. 나는 나밖에 몰랐고, 아빠의 사랑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빠가 날 사랑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 귀하고 값진 시간들을 흘러 보냈다. 그걸 뒤늦게 알게 된 지금, 나는 매우 슬펐고 괴로웠다. 어쩌면 그 슬픔과 괴로움은 이제 이 세상에 나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온. 그러니까 또 나밖에 모르는 내가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데서 출발한 괴로움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괴로움의 이유가 무엇이든. 나를 제일 좋아했던 아빠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아빠는 떠나가버린 그 좋은 세상에서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그 세상에서도 나를 지켜보며 나를 좋아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나밖에 모르는 나쁜 딸이어서. 아빠가 그 세상에서 나보다 좋아하는 것을 못 찾았으면 좋겠다. 아빠가 그 곳에서도 여전히 나를 제일 좋아하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못되고 나쁜 마음이지만, 그래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