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못 딸이 2달만에 원서 200권을 읽기까지
6개월 정도 영어 만화만 보고 별다른 영어 학습은 없는 상태로 딸램은 10살을 맞이했다. 3달 뒤엔 학교에서 정식 교과로 영어를 배울테니 슬슬 알파벳이랑 I, She, have, make 같은 기본 단어들은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이 알파벳을 하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소문자를 거의 몰랐고 단어는 주로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동물이나 과일이름, 색깔 정도만 아는 상태였다.) 일방적인 학습이 아닌 아이가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플래쉬 카드를 만든다거나 활동을 준비하기에는 사실 너무 귀찮았다.
영어학원에서도 일해봤고 TESOL도 했으니 하려면 어렵지 않게 활동을 만들 수 있지만, 그런 걸 맨날 할 수는 없지 않나. 솔직히, 영어랑 상관없이 사는 다른 평범한 엄마들은 아이디어도, 여유도 없지 않을까? "엄마가 영어를 잘하니까, 엄마가 영어 선생이니까 당연히 애가 영어를 잘하지!"라는 소린 듣고 싶지 않고 (왜? 영어란 언어고 언어는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의 실력을 핑계로 아이를 학원에 맡기는 엄마들에게 빌미 따윈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게는 해야겠고... 그렇게 고민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렀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듀오링고(Duolingo)라는 언어학습 앱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링크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9010217467775232) 원어민이 아닌 미국의 대학교수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앱을 만들었는데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의 언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다길래, 스웨덴에 잠깐 살았던 나는 스웨덴어가 있는지 궁금해서 앱을 다운 받고 확인해보았다.
스웨덴어 뿐만 아니라 정말 무수한 언어들이 있었다. 스웨덴에선 영어만 써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던 터라 스웨덴어를 1도 모르는데 정말 스웨덴어를 배울수 있을까? 어떻게 배우게 되는걸까? 언어를 습득하게 만드는 방식이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듀오링고앱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일단 단어를 주고 여러 개의 보기를 준 뒤 뜻을 맞춰보게 한다. 단어를 매칭하면서 뜻을 알게 될 즈음에 소리내서 단어를 읽어보게 하고 단어들을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문장을 읽어서 연습하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나는 10분만에 나는 스웨덴어 단어를 10개정도 배웠고, 3개정도의 문장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딸도 영어를 금방 배우겠는데!' 싶었다. 문제는 계속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딸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을 엮어서 카톡방에 묶어놓고 매일매일 인증샷을 찍어 올리게 한 다음, 100일 동안 열심히 한 사람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하면 지속적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당장 딸을 포함한 초등학교 아이들 5명을 묶어 카톡방에 초대했다. 그리고 톡을 던졌다. "이거 3달간 열심히 하면 한 명 당 문화상품권 5만원씩 줄께!"
아이들은 열광했다. 게임만 열심히 해도 (사실 영어학습이지만) 문화상품권을 5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애들 입장에선 안할 이유가 없었고, 게다가 단톡방에 매일 인증샷이 올라오다 보니 까먹지도 않고 경쟁심도 살짝 작동했다. 영어학습인데 게임 방식으로 하다보니 아이들은 학습이라는 생각보다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듀오링고는 매일 하면 "3일 연속 목표 달성~" 이런 식으로 표시가 나오고 보상으로 보석을 모을 수 있게 해준다. 보석은 듀오링고에서 문제를 틀렸을 때 생명력이 줄어드는데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는데 쓰이는 아이템이다.)
아쉽게도 거의 3달이 될 무렵 연속일수가 제일 높았던 아이가, 연속 70일에서 무너져서 1일이 되는 순간 의욕을 잃어 안한다고 선언하면서 애들이 우르르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그 바람에 100일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애들이 다 성공했으면 순식간에 25만원이 나갈 뻔 했으니 ㅋㅋ) 그렇지만, 3달간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10분에서 15분씩 영어를 듣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딸은 자연스럽게 영어의 어순이 우리말과 다르고 We, She, It, and, but, see,make 등의 Sight word(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100여개의 단어)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고 혼자 재미있게 배웠으니 그만큼 큰 수확이 어디있을까!
앞서 내가 링크를 걸어둔 기사에 따르면, 듀오링고를 34시간 했을 때 얻는 효과는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외국어 강의를 듣는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애들이 하루 평균 15분씩 80일간 듀오링고를 했다고 가정했을때, 아이들은 20시간의 외국어 강의를 들은 것과 같다. (15분x80일= 1,200분 = 20시간) 과연 우리 애들이 20시간 동안 학원이나 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라고 했으면 이렇게 재밌게 했을까?
요즘 딸램은 영어책 읽는 걸 더 좋아해서 듀오링고는 쳐다 보지도 않지만, 나에게 듀오링고는 여전히 고마운 존재라 차마 핸드폰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재밌게도, 마침 듀오링고 앱에서 계속해서 학습을 이어가라는 푸쉬를 보냈다.)